이제 미국 생활이 채 4개월도 남지 않았건만 나의 위시 리스트는 여전히 해보지 못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카멜(Carmel)과 빅서(Big Sur) 쪽으로 놀러 가기, '디즈니 온 아이스' 관람하기, 뮤지컬 '라이언 킹' 관람하기, 크리스마스에 뉴포트 비치에서 열리는 '보트 퍼레이드' 구경하기, 리버사이드에 있는 '미션 인(mission inn)'에 가서 더 페스티벌 오브 라이트 경험하기 등등...

하지만 이런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그동안 나의 위시 리스트 최상단에 있었던 항목은 생뚱맞게도 바로 '소방서 오픈 하우스 관람하기' 였더랬다^^ 

일년에 이맘때쯤 딱 한 번 밖에 열리지 않는 것이기에, 나는 지난 일년간 이 날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달력이 엄청 큰 하트를 그려 놓았었다. 그리고 미리 소방서 웹사이트를 통해 약 1년 전부터 날짜를 확인한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소방서 앞을 지나갈 때마다 언제쯤 오픈 하우스 현수막이 붙을까 노심초사 기다리기도 했다.

 

두둥~ 드디어 오렌지 카운티를 총괄하는 이 소방국에 오픈 하우스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붙었다.

으흠... 10월 12일 토요일이라... 매주 토욜 오전은 하은이 한글학교 수업이 있는 날이긴 한데... 그래, 당연히 이 날 수업은 확! 째야겠군... 나는 그냥 아이들을 데리고 소방서로 바루~ 고고씽 하련다.

 

그리고 그렇게 벼르고 별러온 나의 소방서 오픈하우스 체험기에는 갑자기 웬 외국인 두 명도 함께 하게 되었는데, 바로 하은이의 절친 케일라와 그 엄마 되시겠다. 아래 사진에 썬그라스를 끼고 나온 엄마가 케일라 엄마구,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아이가 귀여운 케일라이다. 그녀는 소방서 오픈 하우스 딱 일주일 전, 갑자기 나보고 10월 12일 토요일에 같이 플레이데잇을 하자고 날짜를 콕 찝어서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자기가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그렇게 주말 플레이데잇을 제안한 것 같았다. 

타이완 아빠와 일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두 살때 미국으로 온 후 여기서 35년을 살았다는 이 케일라 엄마는, 나의 영어가 후달리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고 언제나 나에게 반갑게 말을 걸어 주는 다소 부담스러우면서도 고마운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사실 내가 그 날 소방서 오픈하우스에 갈 예정이라 플레이데잇을 하긴 어렵겠다고 슬그머니 거절을 했는데, 그럼 소방서에서 같이 플레이데잇을 하잰다^^

그래, 까짓 거, 같이 가지 뭐. 공원에서 애들 놀리면서 엄마들끼리 멍하니 서서 뻘쭘하게 되지도 않는 영어로 얘기하느니, 차라리 같이 소방서를 둘러보는게 훨씬 자연스러울수도 있으니깐~^^ 

 

다시 소방서 얘기로 돌아간다. 여기다. 오렌지 카운티 소방국.

미국에는 개별 city마다 작은 규모로 여러 곳의 소방서가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오픈 하우스는 이렇게 카운티를 총괄하는 큰 소방서에서 운영하는 것이 규모도 크고 볼 것도 많을 것 같아서 나는 이곳을 선택했다(물론 다른 시티에 있는 소방서들이나, 다른 카운티를 총괄하는 소방국도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오픈 하우스를 연다).  

 

제일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소방서 중앙의 광장으로 나가 보니, 이렇게 원격 조정되는 귀여운 미니 소방차가 먼저 와서 아이들의 이목을 확~ 집중시킨다. 내 눈에는 저쪽 뒤에서 어떤 소방관이 요 미니카를 조정하고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아이들은 이 미니카가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냐며 금세 눈이 휘둥그래진다^^

 

아이들은 넓은 소방서 대지를 뛰어 다니며 소방국에서 공짜로 나누어 준 소방관 모자를 써보기도 하고, 다소 유치하게 생긴 이런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 보기도 한다.

 

그뿐인가. 어린 아이들을 위해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소방서 마스코트 인형들과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실내에 마련된 공간으로 들어가면, 어린 아이들을 위한 소방 놀이도 잘 준비되어 있다. 

 

또 한 켠에서는 소방관 아줌마의 설명을 들으면서 소방안전과 관련된 컬러링을 해볼 수도 있고

 

야외 부스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현직 소방관들의 입을 통해 절연재 관련 건축 소재와 실내 가스렌지 등 방화위험 가전제품의 사용법 등도 친절하게 들을 수 있다.

 

또 소방국의 역사와 소품을 전시하는 작은 뮤지엄 부스에 가서 각종 자료들을 관람할 수도 있고

 

뮤지엄 바로 옆에는 소방관들이 직접 나와서 자기들이 화재 진압을 위해 사용하는 물건들을 보여 주며 용도를 설명하고 시범을 보여 주는 코너도 있다.

 

그밖에도 소방 관련  '교육용 트레일러'와

 

소방관들의 옷과 신발을 직접 착용해 볼 수 있는 코너도 인기였다.

 

게다가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은 오픈 하우스의 취지답게 소방차고까지 오픈하여 아이들이 소방차고로 직접 들어가 소방차들이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게 정비받고 관리되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인기 있었던 순서는 자기가 정말 소방관이 된것처럼 소방차에 직접 올라타 보는 것과,

 

만일 단순히 소방차 운전석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게 시시하다면, 이렇게 움직이는 소방트럭에 직접 시승해 보는(fire engine rides) 코너였다.

 

그리고 미래의 꿈나무 소방관들은 자기가 진짜 소방관이 된 것처럼 불이 난 모형물에 직접 호스로 물을 뿌려 진화하는 체험학습(hose squirting)에 트라이하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사실 오늘 소방서 오픈하우스를 보면서 내가 젤로 놀랐던 건, 소방서 오픈하우스에 '페이스 페인팅' 부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앞서 소개한  활동들이야 소방서 본연의 임무와 관련된 일이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런 페이스 페인팅은 불러도 그만 안불러도 그만인 서비스인데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이런 작은 배려까지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국에서 복지부동에 쩔어 있었던 전직 준공무원이자 골수 행정학도였던 나에게는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실컷 소방서 구경을 마친 우리 하은이와 주은이, 그리고 케일라는 모두 왕같이 높은 의자에 떡~하니 앉아 자기들이 고른 멋진 캐릭터를 어엿하게 공짜로!!! 팔뚝에 그려 넣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넓은 소방국을 휘저으며 두 시간도 넘게 오픈 하우스를 즐기다 보니 어느덧 목마르고 촐촐해진 우리는, 소방국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도넛(그것도 크리스피 앤 크림 것으로!)과 커피까지 다 챙겨 먹으며 오늘, 그 대단원의 일정을 마무리지었다.  

 

소방서 오픈 하우스.

내가 한국에 살 때에는 소방서에서 이런 걸 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미국에 와보니 소방서는 마냥 불나길 기다리고 있다가 이미 일어난 불들만 끄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프리스쿨이나 킨더가튼 등을 돌면서 정기적으로 어린이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이렇게 일년에 한 번씩은 지역 사회에 있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하여 소방서에서 하는 일을 보여 주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안전교육까지 지대로~ 시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소방서 오픈 하우스에 직접 참여해 보니, 모든 소방관들이 토요일에 총출동하여 어찌 보면 본연의 업무 이외의 일을 수행하면서도, 너무도 친절하게 사람들을 맞아주고 또 자기가 배치된 부스에서 최선을 다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니,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직업의식이 얼마나 아름답고 더 나아가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오늘, 그동안 내 위시 리스트 맨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던 항목 하나를 또 지워냈다. 한국에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다보니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일들도 나에겐 소중하게 느껴지는게 많다.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그리고 남은 시간에 최선을 다함으로, 모쪼록 남은 미국생활을 후회없이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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