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얼바인 인근에서 가장 핫한 몰을 고르라면 그건 아마도 사우스 코스트 플라자에서 405 프리웨이를 타고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OC Mix' 일 것이다.

사실 이 몰이 조성된 지도 꽤 되었고 나 역시 그동안 이곳에 자주 갔던 터라 새삼스레 포스팅까지는 안하려고 했는데, 오늘 이곳에서 열린 National Charity League 바자회를 보면서 글 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가구 브랜드들이 많이 입점해 있는데, 몰을 운영하는 사람이 머리를 잘 써서 그런지 그냥 가구 매장만 많이 있는게 아니라 맛난 레스토랑은 물론 트렌디한 커피숍이나 의류 및 각종 악세서리 가게에 이르기까지 여러 샵들이 모여 여느 미국 몰답지 않은 아기자기한 풍경을 연출해 내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 몰이 아무리 트렌디하다 해도 사실 이곳의 인기는 바로 '포톨라 커피 랩(portola coffee lab)'에서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야 뭐 항상 인스턴트 커피인 맥심 모카골드만 죽어라 먹어대니 커피에 대한 조예는 커녕, 커피에 관해서는 완존 문외한이지만, 주변에 커피맛 좀 안다는 사람들 치고 이곳에 열광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는 걸 보면 여기 커피맛이 좋긴 좋은가 보다.  

 

뭐 실험실 기구처럼 이렇게 요상하게 생긴 도구들을 이용하여 커피를 만들어 주는 것은 물론,

 

실험실에서나 입을 법한 흰 가운을 입은 바리스타들이 마치 예술작품을 뽑아 내듯이 커피를 내려 준다.

 

게다가 얼바인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라떼 아트까지 선보여 주시니 우울한 날, 나를 위한 스페셜 커피는 마시며 기분을 전환하려는 아줌씨들이 끊이지 않을 법도 하다.

 

참! 포톨라 커피 랩 바로 옆에는 이렇게 세븐스 티 바(seventh tea bar)라는 티 전문점도 있는데, 사실은 포톨라 커피 랩 사장 부부가 같이 운영하는 가게란다.

얼마 전 OC Parents 라는 잡지에 이 부부 이야기가 실렸는데, 남편은 원래 바리스타를 취미로 하는 직장인이었고, 어린 아이가 셋인 아내 역시 평범한 회사에 다녔었는데 아픈 아이의 병원 스케줄을 맞추기 위하여 아내는 좀 더 플렉서블한 자기 사업을 생각하게 됐단다. 이래서 취미가 평생 직업이 될수도 있고,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고된 삶이 때로는 인생의 반전도 가져올 수 있나 보다.

어쨌든 커피믹스 외에는 커피 맛도 잘 모르는 주제에, 티 맛은 더더욱 알리 없는 우리의 윤요사는 그저 하릴없이 사진만 찍어댈 뿐이다 ㅋㅋ 

 

그런데 언제나 한산하던 이 건물이 오늘은(11. 21) 매우 붐비니 이상할 따름이다. 게다가 단순히 여느 사람들로 붐비는 게 아니라, 부티가 철철 흐르는 키 170 이상의 늘씬한 금발 아줌마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멋을 잔뜩 부리고 루이뷔통이나 샤넬 가방을 든 채 총출동해 주시니 더욱 궁금증이 증폭된다.

무슨 이유일까? 나중에 상인들에게 물어 보니, 오늘이 바로 매년 하루만 열리는 '내셔널 채리티 리그 뉴포트비치 지부'의 나눔 바자행사가 열리는 날이란다.

 

벤더들이 와서 각자 부스를 마련하고 물건들을 진열해 놓으면 돈 많은 뉴포트비치의 사모님들이 마구 마구 물건들을 사주고 거기서 남은 수익금으로 좋은 일에 쓴다고 한다.

난 말로만 듣던 뉴포트비치의 사모님들을 떼거지로 본게 오늘이 첨이었는데 수수하게 차리고 온 사람은 하나도 없고 어찌나 다들 돈있는 티를 퍽퍽 냈는지(^^) 멋모르고 무릎 튀어나온 아베크롬비 츄리닝 입고 커피 마시러 간 나만 괜시리 외계에서 온 사람이 되어 버렸다 ㅋㅋ 

 

야! 내가 오늘 옷은 이래도 사실 돈은 좀(?) 있다구! ㅋ  급 자존심 구겨진 우리의 윤요사, 괜히 영어 공부할 때 쓸거라며 즉석에서 그릇이나 문구류에 이름을 써주는 부스로 가, 하잖은 스프링 노트를 16달러나 주고 사는 허세를 부려 본다. 하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돈이 아깝던지... 저 3000원짜리도 안되는 노트를 거의 2만원이나 주고 샀다는 사실을 울 남편이 알면 어쩌나 ㅋㅋ(역시 나는 태생이 구려서 레알 부자가 될 순 없나보다 ㅋ)

어쨌든 예술가 언니가 자기가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노트에 Young lan이라고 내 이름을 써주고 있다. 솔직히 아까워서 차마 못 쓸것 같고 서랍 안에 잘 간직해야겠다^^

 

여담이지만 내셔널 채리티 리그는 아무나 모이는 모임은 아니고 기본적으로 7학년에서 12학년 사이의 딸을 둔 엄마가 그 딸과 함께 참여하는 비영리자선 단체라고 들었다. 그래... 사춘기를 지내는 딸과 함께 엄마가 이렇게 좋은 일에 참여하는 것도 참 의미있는 일일게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내 딸이 나의 삶을 부러워했음 좋겠다. '울 엄마 같이 살기 싫어요'가 아니라 '난 울 엄마처럼 그렇게 살래요'라고 말했음 좋겠다. 그런데 나는 요즘 나의 일이 없이 집에서 아이를만 키우며 살다 보니 내 꿈이 희미해지는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어지는 것이 너무 슬프다.

오늘 하루, 국은 뭘 끓일까 반찬은 뭘 만들까... 청소할 때가 됬나 빨래감은 쌓였나 애들은 언제 씻길까... 죙일 그런 생각만 하다 보니, 그런 일들이 결코 가치 없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 삶 자체를 가치 없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걸 옆에서 지켜 보는 내 딸이 과연 나의 삶을 가치있게 생각할지 의문이다.      

 

또 넋두리가 길어졌다. 이노무 넋두리에는 약도 없나보다^^ 다시 본론이다. 포톨라 커피 랩이 위치한 건물 밖으로 나오면 이렇게 아기자기한 모습이 펼쳐진다. 이 몰이 좋은 건, 땅 값 생각하지 않고 이렇게 초록 자연을 곳곳에 심어 놓았다는 거다.

 

이제부턴 내 맘대로 아무 샵이나 들어가서 감성지수를 업시키면서 그저 구경하기만 하면 된다. 이 몰에는 유명하고 비싼 프랜차이즈 가구점들도 많지만, 나는 이렇게 조그만 아이 가구샵이나 앤틱샵에 더 끌린다.

 

또 아직 시식해 보진 못했지만, 청담동 삘 풀풀 나는 케익 하우스의 데코도 인상적이다.  

 

그리고 너무도 귀여운 카툰들을 주종으로 하는 자그마한 갤러리도 맘에 든다. 카툰 그림이 하도 예뻐서 하은이 방에 걸어 주고 싶었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한 개에 25만원도 아니고 250만원이란다. 썅!

내가 예술작품을 못알아 보는 건지, 아님 예술이 돈의 가치를 못알아 보는 건지 잘 모르겠다 ㅋㅋ 

 

그리고 온갖 비싼 가구점들은 다 스킵하고, 하은이가 좋아하는 프린세스 및 헬로 키티가 유치하게 그려진 아이들 가구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아직 하은이 방을 따로 만들어주지 못한 터라, 아이들 가구에 관심이 많다. 그것도 싸구려로 ㅋ 

 

거기에 이곳 저곳 둘러보다 눈알을 하도 굴려서, 안구정화하려다 오히려 안구가 피곤해지는 인테리어 샵 구경은 기본이다.  

 

아... 배고프다. 오늘은 여기서 점심을 좀 먹어볼까? 신선한 샐러드를 먹기에는 이곳이 딱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덧 한 시 반. 이제 하은이와 주은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다. 난 매일 아침 9시면 자유의 몸이 되고, 오후 1시 반이 되면 누군가의 엄마로, 아내로, 그리고 며느리로 다시 변신하는 줌마렐라이다.

그래도 이 4시간이, 남은 하루의 20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 시간동안 나는 어떤 날은 어덜트 스쿨에서 영어를 배우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이렇게 몰을 돌아 다니기도 한다. 물론 또 어느 날은 그 4시간 동안에 밀린 집 청소와 빨래를 하며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감사한다. 하루 중 이 4시간 동안의 자유시간을 얻기 위하여 나는 그동안 이 낯선 미국에서 주은이를 24개월 동안이나 하루 종일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4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이제 약 3개월 밖에 남지 않은 나의 미국 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이 시간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영란아! 이제 더 이상 게으르게 집 소파에 벌렁 누워서 다운 받은 한국 드라마나 보면서 이 귀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꾸나.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또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그렇게 살다 돌아가는 거야. 알았지? 

 

 

Posted by 모델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