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구정)이 돌아왔다. 미국에서는 이를 '차이니즈 뉴이어'라고 부르지만, 당연히 별다른 행사는 없다. 그냥 어덜트 스쿨에서 차이니즈 뉴이어 관련 풍습을 가르쳐 준다거나 하은이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이 동양계 아이들에게 '해피 차이니즈 뉴이어'라고 인사해 주는 정도랄까?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자란 한국 아이들에게 자기 뿌리를 가르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우리 '디사이플 한국한교'에서는 이번에도 설을 맞이하여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고 오게 하는 것은 물론, 특별히 윷놀이 대회도 마련했다.

하지만 윷놀이도 배가 불러야 할 수 있는건 당연지사!  윷놀이 하기 전, 아이들이 교회 식당에서 이른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한복을 입은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다. 하은이 옆에서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저 머리 큰 아이는 요즘 하은이에게 강력히 대시 중인 친구 아들 이헌이다. (이헌이! 너네 집 재산세 납부 명세서 가져 왔어? 이 장모님께서 사위감 심사하는데 꼭 필요하단 말야 ㅋㅋ) 

 

곧이어 윷놀이 시간이 돌아왔다. 프리스쿨 아이들(개나리 1반)과 킨더가튼 아이들(개나리 2반)이 먼저 치열한(?) 예선전을 치르기 위하여 빙 둘러 앉고 있다.

 

드디어 하은이 차례. 윷놀이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우리 하은이, 오늘은 도, 개, 걸, 윷, 모를 신나게 외치며 나무조각 4개를 겁나게 높이 공중으로 던져부린다. 얘야! 그러다가 담요 밖으로 벗어나 오히려 꽝 나올라!^^

 

폼은 그럴듯 했는데 '개'나 '걸'만 작렬하시니 좀처럼 팀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우리 하은이다ㅋㅋ. 그러자 선생님들께서 윷조각을 여기까지만 던져 보라며 손으로 기준을 잡아 주신다.  

 

그러면 뭐하나. 역시 '개'인데 ㅋㅋ

하은이도 부끄러운지 금방 제가 던진 윷조각들이 주워 모은다. 일종의 증거인멸인가? ㅋㅋ

 

아이들의 윷놀이가 끝나자 한쪽에선 부모님 대항 윷놀이도 벌어졌다.

하은아! 시방 이 에미가 너를 뭐라 할 게 아니구나. 자신있게 참가한 윤요사의 3회 누적 성적은 '개', '도', 그것도 모자라 '빽도'까지 ㅋㅋ

 

그렇게 윷놀이가 끝나고 이제는 세배할 시간이다. 아이들은 미리 선생님들께 배워 놓은 세배하는 법을 따라 그럴싸하게 세배를 해본다. 아유~ 이 귀여운 것들!

 

아이들은 세배가 끝나자 마자 교장선생님께로 달려가 한글학교 측에서 미리 준비한 행운의 2달러가 들어 있는 세배돈 봉투를 잽싸게 받아 든다.

하은이도 세배돈을 받아 들고 기뻐하고 있다.(그러면 뭐하나... 이 돈은 곧 엄마의 지갑 속으로 즉각 회수될텐데^^).  근데, 하은이 머리에 꽂은 꽃핀이 너무 커서 꼭 평양어린이 합창단원 같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날 아이들은 학부모들이 도네이션 한 각종 학용품 선물 꾸러미도 받았는데, 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돈의 가치를 아직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오히려 세배돈을 받을 때보다 더 입이 쩍 벌어진다. 

그래... 이 엄마도 예전에 설날이 되면 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세배하고 선물 받는게 그렇게도 좋았단다. 그게 벌써 2,30년 전의 얘기가 되어 버렸지만...^^

 

끝으로 오늘의 단체 사진.

가운데 앉으신 고현종 디사이플 교회 담임 목사님과 한복을 곱게 입으신 김혜순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 그리고 노란 잠바를 입으신 다섯 분의 고학력(^^) 선생님들과 수십여명의 철없는 아이들, 그리고 그 부모님들의 모습들이다.

내년 2월에 우리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오늘의 이 추억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하여 내가 의자에 올라가서 직접 찍은 귀한 사진 되시겠다.^^ 

 

그리고 며칠 후.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 또 주은이의 생일이기도 하다.

그래... 아직 임신 35주 밖에 되지 않았던 2년 전 발렌타인 데이였지.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 기념 외식을 어디서 할까... 하고 이 철없는 엄마가 짱돌을 굴리고 있을 때, 갑자기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우리 주은이가 1.99킬로그램의 미숙아로 태어났던 바로 그 날. 그리고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머, 그게 바로 저인가요?... 부끄러워라. 안녕하세요? 저는 발렌타인데이 걸, 두 살 민주은이에요.

 

썅! 기지배, 볼에다 손 올리고 청순한 척 하기는...ㅋㅋ 니가 이 귀여운 얼굴로 그동안 엄마에게 4번의 유선염과 2번의 젖몸살을 안겨주면서도 대차게 생후 10개월간 꼬박꼬박 모유수유를 받아 먹고, 밤마다 2시간 간격으로 한밤동안 평균 4회 이상을 깨주시면서 엄마에게 수면장애를 가져다 준 것도 모자라, 하루라도 변비에 걸려주기를 애타게 기다렸던 이 엄마의 바램을 무참히 깨면서 지금까지 하루에 평균 4번씩이나 똥을 싸제기고 있단 말이냐!!! ㅎㅎ

이제 넋두리는 그만 하고 데이케어에서 열린 주은이의 생일 잔치는 모습이나 살펴 보자. 우리 데이케어는 원생이 꼴랑 두 명 뿐인 관계로, 또 다른 원생이자 주은이의 첫번째 보이프렌드인 조나단도 오늘의 생일잔치에 함께해 주었다.

 

주은이 다 키운 생각에 눈물이 나올 뻔 했던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고(하하, 윤요사, 웬 청승은...), 자~ 이제 촛불을 끌 시간이다. 주은이가 촛불 두 개를 바라보며, 어라... 이걸 어떻게 끈다? 하고 생각하고 있다.

 

이에 주변 사람들이 촛불 부는 흉내를 내자, 자기도 처음으로 약한 입김을 한 번 불어 본다. 주은아! 그렇게 약하게 불어서야 어디 촛불이 꺼지겠니?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촛불 하나가 꺼졌다. 그녀는 이제 다른 하나에 집중한다.

그래, 앞으로도 이렇게 무슨 일이든 하나 하나 배워 나가겠지... 세상은 결코 녹록한 곳이 아니란다.(그래서 이 엄마가 나중에 거친 세상에 나갔을 때 놀라지 말라고, 지금부터 집안에서 몸소 그것들을 가르쳐주는 거란다... 음하핫!)

 

아래 사진은 보이프렌드 조나단 엄마와 데이케어 집사님이 주신 주은이 생일 선물들. 조나단 엄마도 와줘서 고맙구, 무엇보다도 집사님! 이 풍선 데코레이션과 고깔 모자, 미역국...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께요^^

 

그리고 저녁때 차려진 진짜 주은이의 생일 잔치.

불고기와 굴비, 계란 후라이와 시금치 콩나물 된장국(미역국은 아침, 점심때 먹었으니깐^^)이 전부이지만, 무시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이 전부 주은이의 페이버릿 반찬들이니깐^^ 헤헤, 하루에 너무 많은 케익을 먹으면 안되니깐 생일 케익도 이번엔 5달러짜리 컵케익으로 대신!

 

나는 요즘 하은이와 주은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안먹어도 배부르다. 하은이가 동생을 너무 아껴주고 주은이도 언니를 매우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오빠와 나, 이렇게 남매로 자랐다. 우린 자라면서도 우애가 썩 좋은 편이었지만 장성하고 또 서로 결혼하고 나니, 일년에 서너번 집안 대소사 챙길때만 연락하는 그런 사이가 되어 버렸다. 어쩌다 아무 일 없이 그냥 안부 전화하면 서로 놀라는 그런 사이 말이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오죽하면 서로의 이름이 스마트폰에 뜨면, 집에 무슨 일이 있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자매 사이를 부러워했다. 예쁜 핸드백이나 옷이 나오면 같이 백화점 갈 수 있는 그런 사이. 맛집을 찾아 다니며 유행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 그리고 예쁜 아이들 옷을 보면 조카들 얼굴이 저절로 떠올라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게 되는 그런 사이 말이다.

나는 하은이와 주은이가 서로에게 그런 자매가 되길 바란다. 다혈질 독재자인 이 엄마(?) 밑에서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는 사이, 부모에게는 말 못하는 자기들만의 비밀을 공유할 뿐 아니라, 거친 세상에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그런 자매 말이다.

외부의 적 앞에서 내부의 결속은 더욱 공고해진다고 했던가? 알았다. 이 엄마가 기꺼이 그 악역을 맡아 주마 ㅋㅋ 하지만 얘들아! 사실은 이 엄마가 격하게 사랑한다!!! 알제?^^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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