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에도 후달리는 영어 실력이 드러날까봐 하은이 프리스쿨에서도 언제나 벙어리 아줌마를 자처하며 그저 눈인사와 미소로만 승부하곤 한다.

하지만 어느 날 하은이의 도시락 가방 속에 들어있는 이 초대장을 발견한 후 나는 기쁘다기 보다는 또 다른 고민에 빠져버렸다. 그것은 바로 얼마 전 우리 하은이와 플레이 데잇을 하고 싶다고 선생님 편에 나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전달했던 이사벨라 엄마가 보낸 초대장이었기 때문이다. 내용인즉슨 자기 둘째 딸이자 이사벨라의 동생인 빅토리아의 돌잔치에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예전에 내가 이사벨라 엄마의 플레이데잇 제의를 무시했던건, 이사벨라와 하은이가 베스트 프렌드가 되는 것은 나로서는 매우 기쁜 일이지만, 그 엄마와 단둘이서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는 건 프리토킹이 전혀 안되는 나로서는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T.T

매사 적극적인 이사벨라 엄마는 이 초대장에 자기가 따로 친필 편지를 넣어서 참석여부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으나 나는 고민하다가 꿀먹은 벙어리 모냥 다시금 씹어 버렸었다. 그런데 며칠 전, 기다리다 못한 이사벨라 엄마가 아예 내 셀폰으로 전화를 때린 것이 아닌가. 나는 이사벨라 엄마인 줄 알고도 망설이다가 안받았는데 그녀는 음성메세지까지 남기며 리턴콜을 부탁했다. 나는 드디어 심호흡을 하고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해서 더듬거리며 초대해 줘서 고맙고 꼭 참석하겠노라고 내 할말만 얘기하고는 그녀가 뭐라고 얘기하는데도 무슨 말인지 전혀 못알아듣고는 걍 끊어버렸다... 이게 웬 쪽팔림인가, 흑흑  (나, 한국에선 나름 엘리트였는데 ㅋㅋ)

어쨌든 영어에서는 꿀릴 지언정 선물에서만큼은 꿀리지 않겠다며 우리의 윤요사, 비싸다며 하은이에게도 절대 사주지 않았던 인형의 집을 텍스 포함 70달러나 주고 선물 포장도 이쁘게 부탁했다. 

 



드디어 이사벨라 동생의 돌잔치 날.
30분 가량을 차로 달려서 우리 가족은 라하브라 시에 위치한 웨스트리지 골프 클럽 하우스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클럽 하우스 전체 실내 장식도 이쁘게 한 것은 물론이고, 홀 중앙에는 아이들끼리 모여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 세팅까지 따로 해놓아서 나는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겉으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표정관리ㅋㅋ



역시 골프장이라 바깥 풍경도 좋구만^^(뭐 우리 부부는 미국 와서도 골프는 전혀 해 본 적이 엄써서리 ㅎㅎ)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클럽하우스 마당에서 어린 아이들을 위한 애완동물(염소, 토끼, 닭 등)들을 가져다 놓고는 아이들이 직접 만지면서 먹이를 줄 수 있게끔 일종의 체험학습의 장을 마련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요 귀여운 당나귀 비스꾸름한 동물은 직접 타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이쁜 안장도 올려 놓고 전문조련사가 직접 끌고 다녀주는 듯 했다. 겁이 많은 우리 하은이는 물론 타 볼 생각도 못했지만^^



홀 입구에 마련된 선물 갖다 놓는 공간.
내가 준비한 선물이 크기는 젤로 크다. 푸하핫!



너무 예뻐서 먹기도 아까왔던 3단 돌 케익.  센스쟁이 이사벨라 엄마는 앞에 이쁜 꽃잎도 깔아놨네~



드디어 뷔페 식사가 시작되었다.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뻑적지근한 뷔페식사는 아니었지만, 울 남편 왈 미국에서 이 정도 뷔페는 대단히 호화스러운 것이라나^^



오늘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풍선 만들어주시는 분. 얼마나 잘 만드시는지 이 분 앞에서 아이들이 몇 시간이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하은이도 오래 기다린 끝에 칼과 방패를 선물로 받았다. 만들어 주시는 분 왈, 여자 아이가 공주 왕관이나 매직 원드 이외에 칼과 방패를 만들어 달라는 건 처음이라며 아이가 참 씩씩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ㅎㅎ(왈가닥 엄마의 영향인가?^^)



오늘의 주인공 가족. 서있는 아이가 하은이 친구 이사벨라. 그리고 안겨있는 아이가 오늘의 주인공 한 살 빅토리아이다. 부모가 마이크를 잡고 하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만 사람인 것 같은데 2세인지 어찌나 영어가 유창하던지... 음메, 기죽어~ ㅋ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페펫 쇼(인형극).
  
지난 3개월 동안 미국 프리스쿨에서 귀동냥 좀 한 우리 하은이, 아니 애슐리는 뭘 좀 알아들었는지 어떤 때는 주의 깊게 경청을 하기도 하고 또 어느 대목에서는 웃고 떠들어 대기도 한다. 쨔식! 니가 엄마보다 낫구나 ㅎㅎ



어린 애는 하루 죙일 영어만 쓰는 유치원에 등떠밀어 보내 놓고, 그 엄마는 정작 영어를 못해서 숨어 다니는 현실이란... 쯧쯧. 나도 내가 이럴 줄은 정말 몰랐다 ㅋㅋ 

나도 빨리 둘째 좀 키워 놓고 영어 공부 좀 해야겠다. 1년차 때 그나마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던 열정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둘째를 낳은 이후에는 외국인만 보면 슬슬 피해 다니기 바쁘다. 하긴 여기 얼바인은 한국인들이 워낙 많아서 1년 내내 영어 한 마디 안하고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니깐 ㅎㅎ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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