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 데이를 기다리며 무슨 레스토랑에서 어떤 근사한 디너를 먹을까 그리고 남편에겐 어떤 선물을 사달라고 할까 등 철없는 생각을 늘어놓던 나에게 하나님은 뜻밖에 둘째 아기를 조금(?) 일찍 선물로 주셨다.

최근 2주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심한 감기에 시달리던 나는 결국 2월 13일 주일날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주일예배와 구역예배를 드린 후, 집에 와서 쓰러져 자던 중 2월 14일 새벽 6시쯤 갑자기 침대에서 양수가 콸콸 쏟아지는 황당한 일을 겪고 말았다.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 응급실로 찾아간 우리는 즉시 입원을 하게 되었고 의사선생님은 양수가 터진 뒤 24시간에서 36시간 안에는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35주 1일... 5주나 빠른 조산이라니... 뱃속의 아이는 막달에 많이 큰다는데 우리 둘째 아이는 그 막달을 아직 시작하지도 못했는데...  나는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많이 나면서 혹시 아이가 정상이 아니면 어쩔까 하는 생각에 분만실에서 내내 여러 가지 몹쓸 생각들이 떠올랐다.

최근 임신당뇨 판정까지 받아서 혈당을 조절하느라 음식을 많이 먹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아이가 일찍 태어날 줄이야... 게다가 내 몸무게는 아직 임신 전보다 8킬로그램 밖에 찌지 않았는데... 난 첫째 낳을 때는 40주 꽉 채우고 낳은 것은 물론 내 몸무게는 13킬로가 늘고 하은이도 3.5킬로그램의 우량아였기에 이런 시나리오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 아픔과 슬픔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발렌타인 데이를 넘기기 한시간 전, 그러니까 2월 14일 밤 11시경에 2.0킬로그램의 작은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겨우 낳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간호원들이 내 아이를 early baby, premature baby라고 부르면서 각종 검사를 하러 들어 올 때마다 내 가슴은 찢어질 듯 했다.

우리 딸이 처음 태어난 순간의 사진들.



그리고 분만실의 풍경들.



나는 5주나 빨리 아이를 낳는 바람에 세세한 아이용품들을 준비하지 못한 건 물론이고 친정부모님이나 시어머니 등 일가친척 하나 없이 꼴랑 남편의 손을 잡고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게 돕는 손길들을 척척 만나게 해주셨는데,

먼저 가장 다행스러운 것은 비록 갑작스럽게 자정에 아이를 낳았지만 그 날은 내 주치의가 당직을 서는 행운의 날이었다. 유일한 한국인 의사인 그 분이 만일 당직이 아니었으면 나는 가뜩이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을텐데 그 의사는 친절한 한국말로 나에게 안심하라고, 오늘은 자기가 당직을 하는 날이니까 틀림없이 자기가 아이를 받아 줄 거라고 시종일관 친절하게 내 상황을 체크해 주셨다.

그리고 프리스쿨 친구 엄마가 다행히 하은이를 이틀밤 동안 데리고 자 주셔서 내가 병원에서 분만하는 동안 하은이 걱정 없이 둘째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교회 목사님과 같은 다락방 식구들이 모두 오셔서 맛있는 미역국과 과일, 그리고 죽 등을 가지고 오셔서 나는 입원해 있는 이틀 동안 미역국을 비롯한 한국음식을 원없이 먹을 수 있었다.



끝으로 이번 기회에 다시 보게 된 우리 남편.
첫째 때에는 애 낳는데 도와주는 것이 없다며 나에게 몹시도 구박을 받았었는데 이번엔 남편이 힘든 나를 대신하여 갖은 영어통역과 힘쓰는 일들은 물론 둘째 아이를 케어하는 일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해주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참 듬직한 남편을 둔 행복한 마누라라는 생각이 들어 참 흐뭇했다.



주은이는 나보다 하루 늦게 퇴원했다. 주은이 없이 먼저 퇴원하는 발길이 어찌나 쓸쓸하던지... 주은이는 황달 수치가 높아서 하루 정도 포토그래프 테라피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설명에, 우리는 아래의 차가운 기계 속에 주은이를 눕혀 놓고 황망히 퇴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제서야 집으로 돌아온 우리 둘째 주은이... 2.2 킬로그램은 생각보다도 더 작은 몸집이었다. 깡마른 주은이의 손과 발, 엉덩이를 볼 때면 나는 마음이 참 아프다.


아직 빠는 힘이 약해서 주은이는 계속 분유만 먹는다. 그 사이 내 젖은 자꾸 불어서 나는 지금 출산 3일만에 젖몸살에 걸리는 또 한 번의 황당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아이가 빨리 커서 정상적인 발달상황으로 자랄 수만 있다면 지금의 고생은 다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첫째 아이를 너무 수월하게 키워서 그랬는지 그동안 아이에 대한 감사가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주은이를 볼 때마다 힘든 내 모습보다는 아이를 먼저 생각하고 그저 이만한 것도 감사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엄마로서 이 아이를 정말 꿋꿋하게 잘 키워내고 싶다...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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