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9일. 우리 가족은 다시 1년만에 한국땅을 밟았다. 이번 여행은 4년으로 예정된 얼바인 주재원 생활 중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어서 그런지 나는 감회가 좀 남달랐다.

다행히 회사 측에서 우리 가족 세 명은 물론, 22개월된 주은이의 좌석까지 예매해 주는 바람에(사실 주은이는 두 돌이 채 안되어서 혹시 자리를 예매해 주지 않으면 어쩌나 슬쩍꿍 걱정했더랬다^^) 우리는 12시간 40분 동안 비교적 쾌적한 비행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한 이틀 후, 나와 남편은 아이들을 2박 3일간 친정에 맡겨 두고 부부동반으로 예정되어 있는 '해외 주재원 제주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하여 다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는 주재원들을 위하여 매년 개최되는 행사지만 작년에는 내가 주은이의 모유수유 관계로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하였기에, 사실 나는 2년 동안 이 행사를 손꼽아 기다려왔다고나 할까?^^

왜냐구? 그 이유는 제주도 왕복 비행기표는 물론, 근사한 해비치 호텔 숙박 및 맛있는 식사가 모두 무료에, 대형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매년 제주의 절경들을 선택하여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적 가치로만 환산해도 수백만원은 족히 나오겠지만, 더욱 좋은 것은 '아이들은 절대 동반 불가'라는 사실! ㅋㅋ (얘들아~ 어린 너희들에게는 미안하다만, 엄마에게도 너희들과 떨어져서 여행과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하단다^^) 

어쨌든 50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내려서 우리가 이틀간 묵을 숙소인 해비치 호텔에 도착하니 이런 현수막부터 우리를 반겨준다 ^^

 

그리고 매년 그렇듯 해비치 호텔 1층에 자리잡은 내가 젤로 좋아하는 섬모래 레스토랑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 주는 센스! ㅋㅋ

오늘의 형광색 코트는 지난 블랙 프라이데이 즈음에 J.Crew에서 30% 세일이라는 대박을 만나 구입해 준 귀요미 코트 되시겠다. 하지만 얼라를 둘이나 가진 엄마가 소화하기엔 약간 무리인듯 ㅋㅋ

 

오호~ 오늘 요기 데코레이션도 맘에 쫌 드는걸~

 

우리는 제작년에는 '해비치 호텔'로 숙소 배정을 받았었는데 올해는 높으신 법인장님들과 한 조가 되서 그런지, 차장급에 불과한 우리 남편은 '해비치 리조트'로 숙소 배정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ㅋㅋ(사실 호텔이 더 새것이라 좋긴 하지만, 리조트라 해도 내가 지금 그런 거 따질 상황은 아니다. 나에겐 리조트도 짱이야요!)

다소 낡은 감이 있는 리조트의 내부 풍경. 그래도 우리 부부가 이틀간 묵기에는 제법 훌륭한 시설이었고

 

창문 밖으로 펼쳐지는 제주 바다의 모습도 나에겐 안구정화 구 자체였다(비록 캘리포니아 라구나 비치나 뉴포트 비치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마 햇빛이 더 쨍했으면 더 볼만했을텐데 우리가 도착한 날은 바람이 몹시 불고 추운 그런 날씨였더랬다. 오죽하면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 준 가이드 아줌마도 오늘 날씨 정도면 제주에서는 아주 혹한에 해당한다고 말씀하셨을까!

 

그렇게 리조트에 여장을 풀자 마자 예정되어 있는 다음 코스는, 명사 초청 특강 및 예술과의 만남, 그리고 내가 젤로 기다리는 만찬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의 초청 명사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와 최근에 펴낸 '남자의 물건' 등의 저서로 유명한 전 명지대 교수 김정운 박사였다. 평소 내가 한 번 꼭 만나보고 싶었던 강사였는데 오늘 강의는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 즉 소통에 관한 것으로서 제목과는 달리 별로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굉장히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3년 전 회사와 학교를 떠나 얼바인에 온후 맨날 애들 뒤치닥거리만 하느라, 강의 비슷한 것이라고는 목사님 설교 밖에 들은 적이 없던 나는(^^) 이 날, 나름 지적호기심을 충족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두 시간이 채 못되는 강의가 끝나자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이 나와서 짧게나마 세계 각국에 흩어져 오늘도 현대/기아차를 팔기 위하여 불철주야 일하는(이건 무슨 70년대 새마을 운동식 문체로세 ㅋㅋ) 주재원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내년의 결의를 다지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래... 다른 주재원들은 모르겠지만, 울 남편만큼은 새벽별 보고 나가서 저녁밥도 굶은 채 별 보며 들어오는 일상이 벌써 3년째이니 이런 치하를 받을만하다 ㅋㅋ

 

그러나 그런 노고 치하와 결의 다짐에 대하여 우리의 윤요사는 당연히 아무 관심 없었으며(^^) 나는 오직 오늘의 만찬 메뉴가 무엇이며 또 언제 나오느냐가 주된 관심사일 뿐이었다 ㅋㅋ  으흠... 메뉴를 보니 매생이 굴죽과 제주 옥돔구이, 그리고 흑돼지 보쌈과 해물 된장찌개 등 캘리포니아에서는 먹을 수 없는 제주 음식들이 가득 나온다고 되어 있구만...  흑... 넘 기쁘당 T.T

 

우왕~ 와인까지! 아싸라비야!^^

 

기다리던 만찬이 시작되고 맛난 음식들이 나옴과 동시에 문화예술 공연이 이어졌다. 한국 무용과 발레는 물론, 

 

최근 매우 유명한 피아니스트 송세진(동생)과 바이올리니스트 송원진(언니) 자매의 놀라운 연주가 이어졌다. 과연 러시아에서 17년이나 유학했다더니 나같은 클래식 문외한이 듣기에도 정말 대단한 연주 솜씨였다.

연주에 감동 받은 나는 남편에게 귓속 말로 우리 하은이와 주은이도 저렇게 나란히 악기를 가르쳐 주면 참 좋겠다고 말을 건넸지만 매사 현실적인 울 남편 왈, '야! 너 우리가 피땀 흘려 모아 놓은 얼마 안되는 돈마저 다 거덜내고 싶냐? 우리 형편에 악기는 무슨... '이라고 말하는 거다.

어이~ 남편! 지금 집에 피아노가 없어서 하은이가 피아노 가르쳐 달라는대도 종이 위에 흑백 건반 그리고 내가 입으로 소리내서 가르치고 있는 거 몰라? 그렇게 현실 안주적으로 생각하지 말구 얼른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서 돈을 더 벌어오란 말이닷!!! ㅋㅋㅋ

 

문화예술 공연을 관람하며 맛난 만찬을 먹다 보니 오늘의 일정도 이렇게 끝이 났다. 오늘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다시 서울에서 제주도로 강행군을 했던 하루였지만 그래도 이런 피곤쯤은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리조트에 몸을 누이자 하은이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제 22개월된 주은이는 그동안 엄마와 떨어져서 하루 밤도 잔 적이 없었는데 괜히 날 찾으며 울 친정엄마와 아빠를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슬그머니 걱정이 몰려왔다.

엄마, 아빠! 이 이기적인 딸을 용서하셔요! 하지만 저도 며칠 쯤은 아이들과 완전히 떨어져서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어요. 강의도 듣고 문화공연도 즐기고 여행도 다니니 좋긴 좋네요^^ 밀린 효도는 서울 올라가서 할께요~

... 비록 이런 나의 구차한 변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꿈속으로 빠져 들고 말았지만^^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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