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나는 본격적으로 밀린(?) 일정들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먼저 12월 11일은 우리 하은이의 세번째 생일이었다. 감사하게도 어머님께서 보고싶던 손녀의 생일상을 멋지게 차려주셨고 형님(남편의 누나)도 모처럼만에 방문한 우리 가족을 위해 외식을 준비해 주셨다.   

우리 하은이가 벌써 세돌을 맞이하다니 정말이지 감개무량하다. 지난 3년간 나의 고생이 얼마나 많았던가...(웬 자화자찬이냐 ㅋㅋ) 이제 겨우 살만해졌는데 벌써 내년 3월이면 둘째가 생긴다니...흑흑(과연 이 사실을 기뻐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어머님 댁에서 며칠을 보낸 후 14일에 남편은 먼저 미국으로 돌아갔다. 나와 하은이가 10여일을 더 이곳에서 체류하는 동안 울남편이 미국에서 혼자 쫄쫄 굶으며 외롭게 회사를 다닐 생각을 하니 가슴이 짠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내년 3월에 둘째를 낳기 전에 단 하루라도 서울에서 친구들과 추억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맘을 굳게 다잡으며 인천공항에서 남편을 배웅하고는 시댁에서 짐을 챙겨서 서초동에 있는 친정집으로 거쳐를 옮겼다.  

그리고 나는 하루를 점심식사 약속, 3시경 커피 약속. 저녁식사 약속 등으로 쪼개고 열흘 동안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회사 동료나 상사들, 대학원 친구들, 고등학교와 대학 친구들, 기타 부류 등으로 나누어 약속을 잡고 거기에 다시 꼭 가고 싶은 음식점들과 꼭 걷고 싶은 거리 등을 매치하여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보고 싶던 사람들과 함께 많은 곳들을 찾아가 먹고 또 쏘다녔지만 그나마 정신줄 놓고 먹는데만 열중하지 않고 그 날의 추억들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던 곳을 중심으로 몇 곳만 올려 본다. 두둥~

먼저 강남역 5번 출구 앞에 위치한 내가 젤로 좋아하는 야쿤카야 토스트 가게. 나는 시도때도 없이 여기를 찾아가 총 5번이나 미친듯이 이곳의 치즈 프렌치 샌드위치를 먹어댔다.



그리고 작년까지 내가 살던 서초동 우성1차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단석가 찰보리빵집과 인근 뉴코아 지하에 위치한 고구마 빵집 Darb를 찾아가는 일도 물론 잊지 않았다^^ 



다음은 친정집 건너편에 위치한 마노핀이라는 카페이다. 원래 새로 생긴 카페만 보면 반드시 가보지 않고는 못배기는 나를 위하여 친정으로 온 날 엄마가 제일 먼저 해주신 말씀. "영란아~ 집 앞 대로변에 마노핀이라고 너 좋아할만한 카페 하나 생겼더라" 내가 그 날로 가봤음은 물론이다 ㅋㅋ

여기는 하와이안 코나 커피만 팔고 케익류 대신 각종 머핀만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꽤 괜찮은 카페였더랬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맛난던건 호박 머핀인데, 개당 가격이 2500원으로 좀 비싸긴 했다.



다음은 나와 울남편이 자주 찾곤 했던 강남역의 오래된 호프집 삿포로 라이언 되시겠다. 우리 부부는 저녁 7시 이전에 도착하면 공짜로 주는 허니브래드와 안주류 중에서 해물치즈떡복이를 매우 좋아했었는데(물론 기네스 맥주도 맛있다) 나는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윤영란 환영 겸 송년회를 위한 단대부고-서초고 10기 조인트 동문회를 이곳에서 개최해 버렸다.

나의 인기도 예전같지 않아 직접 연락을 돌린 친구들 중 일부는 감히 배신을 때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남자 넷, 여자 넷의 양호한 성적을 보이며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예전에 나는 수많은 원성 속에서도 꿋꿋이 남자 동기들한테만 연락을 돌리고 여자 동기들은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전략을 취하곤 했는데 이번엔 내가 부부동반도 허용하는 부처님 수준의 자비를 베풀다니...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ㅋㅋ)   



다음은 나의 영원한 핫 플레이스 매드포갈릭이다. 나는 예술의 전당점에서는 지영 언니를, 삼성타운 점에서는 홍팀장님을, 그리고 사당점에서는 안윤정씨를 만나면서 총 3회나 이 곳을 방문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한국에 있을 적에 매드포갈릭의 완전 VIP고객이었다. 미국에서 입덧할 때 여기 음식들이 얼마나 땡기던지... 흑흑. 나는 이번 기회에 완전히 소원성취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장학재단 홍팀장님. 바로 전날 무리한 과음에도 불구하고, 안나오시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릴 것이라는 나의 협박에 못이겨 나와 주시었다^^  나는 홍팀장님과 함께 이번 시즌 새로 출시된 랍스터 파스터를 비롯하여 봉골레 마레 파스타와 고르곤졸라 피자에 이르기까지 마치 식신이 강림한 듯 먹어치우는 괴력을 발휘했다.



여기는 압구정 현대백화점 5층에 위치한 그 유명한 팥빙수와 팥죽 전문점 '밀탑'이다. 나는 여기 팥빙수와 단팥죽을 꼭 먹고 가야 한다는 나의 신념대로 엄마, 아빠와 하은이와 함께  결국 눈발이 흩날리는 추운 어느 날, 이곳에 와서 꽤나 많은 양의 팥들을 몸안으로 미친듯이 쏟아 넣으며 혼자 흐뭇해했다 ㅋㅋ 



교대역 치킨뱅이 역시 빠질 수 없다. 내가 회사생활 하던 동안에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못지나간다는 말처럼 나는 퇴근길에 이 곳을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더랬다. 여기 마늘치킨과 양념치킨, 그리고 골뱅이 소면 무침은 하은이의 육아로 인하여 지친 나에게 있어(결코 회사 일로 지치진 않았음 ㅋㅋ) 마약과도 같은 존재였다.

오늘은 당시 내가 속한 팀의 팀장님이던 서팀장님이 한 턱 쏘시고 역시 같은 팀이었던 김은희 대리가 나와 주어서 우리 셋은 오랜만에(실은 딱 1년만이지만 ㅋㅋ) 회사 돌아가는 얘기와 함께 지난 1년간의 일들을 즐겁게 풀어낼 수 있었다. 이들을 만나고 나니 나는 불현듯 잊고 있던 회사생활이 또 다시 그리워졌다. 나는 미국에서 몇년을 더 살아야 하고 둘째도 키워야 한다고 애써 위로해 보았지만 역시 나는 사회생활을 못견디게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신사동 가로수길' 역시 빠질 수 없다. 나는 여기서 같이 회사에 다니던 박창연 대리를 만나기로 하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이 거리를 왕복 서너번씩 샅샅이 훑으며 기억 속에 저장하려고 애를 썼다. 

아래 사진은 '부첼라'라고 가로수길에서 급유명한 샌드위치 가게이다. 비록 작은 점포이고 샌드위치 값이 1만원에 육박하지만 이곳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나도 9800원짜리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정말이지 돈이 아깝지 않았다.
  


부첼라를 나온 우리는 부른 배를 부여잡고 내가 여성잡지를 뒤져 찾아낸 W.E라는 카페에 들어갔는데, 우리는 거기서 고구마라떼와 함께 호떡과 인절미 아이스크림, 그리고 고구마를 이용한 맛난 후식을 먹으며 또다시 신나게 이야기꽃을 펼쳤다.  



우리 친정집 바로 옆에 위치한 아크로비스타 상가 역시 나의 핫플레이스이다. 이 상가 로비층에 위치한 '부엌과 서재 사이'에서 나는 대학시절 첫 친구인 신재를 만났다. 자기는 멀리 양평동에 살면서 그리고 자기 아이는 아직 두 돌 밖에 안되었으면서도 멀리서 온 나를 만나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 준 15년 지기 친구가 한없이 고마운 하루였다.

그리고 아크로비스타 상가의 같은 층에 위차한 파리 크라쌍 역시 내가 너무 사랑하는 곳인데 이곳은 서울 시내에 깔리고 널린 다른 파리 크라쌍들과는 수준이 다르다(맛도 더 좋고 분위기도 더 좋다)는 게 나의 편파적인 의견 되시겠다.(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그리고 나는 귀국하기 며칠 전, 대학원 동기 은실이를 불러 들여 교대역 부근에 위치한 옛집보쌈집까지 섭렵해 버렸다. 이 곳은 사실 보쌈도 괜찮지만 그보다는 수수부침과 항하리 수제비가 더욱 맛있는 곳이라 하겠다.  



참! 끝으로 1년만에 다시 한국에 나가서 거리를 쏘다니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한 가지 소개하자면 바로 '카페베네'가 매우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여기도 카페베네, 저기도 카페베네... 결국 호기심 덩어리인 나는 그 중 한 곳에 들어가 보았는데 각종 커피와 음료를 돌아가면서 먹어본 결과 결론은 "그럴만한 이유있다"는 것이었다. 이 곳에서 내가 맥프라페와 스타벅스에만 길들어져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카페베네는 아이스모카도 맛있었지만 녹차라떼와 블루베리 라떼 맛이 특히 괜찮았다.  



이렇게 나의 짧았던 한국방문이 끝나고, 12월 23일 나는 남편과 집이 있는 LA공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남편과 함께 집에 돌아와 보니, 지난 4개월 전에 주문했던 붉은 색의 노르웨이 에코르네스사의 초고가(거의 300만원에 육박하니 초고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하다^^) 스트레스리스 리클라이너가 거실 한 켠에서 샤방샤방하게 빛나고 있었고 

식탁에는 그동안 남편이 종이로 만들어 놓은 루돌프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탄 싼타할아버지가 나와 하은이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지난 한 달 동안은 한 해를 마감하며 조용히 나를 돌아볼 새도 없이 하와이와 제주도, 그리고 서울을 돌아가며 분주하게 여행에만 몰두했던 시간들이었다. 임신 7개월의 무거운 몸으로 나는 왜 그렇게 바깥으로 돌아다니는데에만 집중했을까...

아마도 내년 3월 이후에는 당분간 여행을 다니거나 나만의 추억을 만들어갈 시간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많이 초조했나보다. 이제 먼길을 돌아 내 집, 내 자리에 돌아왔으니 이제는 정신을 좀 가다듬고 엄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의 임무에 좀 충실해야겠다. 그리고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소홀했던 신앙적 측면도 좀 가다듬으면서 그렇게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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