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는 고3때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왔다. 웬 고3때 친구들이냐고?
실은 몇 달 전, 우연히 미국마트에서 과일을 사다가 낯익은 두 얼굴의 아줌마(?)들을 발견했는데, 이게 웬 걸... 내 서초고 3학년때 한 반이었던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15년이 넘게 서로 길에서조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는데(물론 고3때도 한 반이었을 뿐, 솔직히 친하지도 않았다^^) 미국 얼바인에서 그것도 어느 미국 마트에서 한 날 한 시에 그로서리 쇼핑을 하다가 서로 마주치게 되다니, 인연인지 우연인지 운명의 힘은 참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두 친구들이 사는 집을 각각 방문했었다. 쨔식들... 아주 잘 살고 있었다. 미국 온지도 벌써 10년 가까이나 되었단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에게 이런 저런 조언들을 많이 해주고 유용한 정보들(주로 어디가 맛있다더라, 어디가 애들 데리고 놀러가면 좋다더라 등)도 많이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나도 그 신세를 갚기 위하여 늘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서 홈메이드 음식을 만드는 것이 번거로와서 나는 집 근방의 '올리브 가든'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사주고 그 다음에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와서 차와 다과를 대접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가 본 올리브 가든은 샐러드 무제한 리필에 파스타와 피자 등 대부분의 음식들이 다 괜찮은 편이었다. 아는 언니는 여기의 와인 절인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했었지만 점심으로 스테이크를 먹기엔 부담스러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한 친구의 아이는 이제 16개월, 다른 친구의 아이는 이제 각 7개월이었다. 몇 달 전, 마트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아직 둘째를 임신한 줄 모르고 있던 때라서, 어린 아이들을 들쳐업고 나온 친구들에게 '야! 니네는 왜 이렇게 애들을 늦게 낳았냐? 우리 애는 좀 있으면 세 돌이다"라며 큰소리 쳐댔지만 이제 내가 임신 5개월인지라 이번엔 친구 애들을 보면서 '야! 니네 애들은 이제 보니 다 컸다. 난 둘째를 언제 요렇게 키운다냐"하고 얘기했다^^



이국 땅에서, 삼십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기에 우울한 고3을 함께 보냈고 한 동네에서 같이 부대꼈던 친구들을 이곳에서 만난 것은 나에게 적잖은 위안이 되었다. 더구나 이 아이들은 미국에서 최근에 아이를 낳고 키웠으니 곧 아이를 낳을 나에게 해 줄 조언이 얼마나 많겠는가? 음하핫~ 난 정말 복도 많다ㅋㅋ


다음은 우리 하은이 얘기!

지난 금요일, 하은이가 유치원에서 만들었다는 호박 파이가 가방 속에 들어 있었다. 마치 자기가 반죽부터 굽기까지 다 한 것처럼 하은이는 의기양양하게 "엄마! 뱃 속에 베이비랑 이거 같이 먹어. 내가 만든 펌킨 파이야"라고 말하며 어깨를 으스댔다. 아마도 선생님들이 거의 다 만들고 하은이는 대충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았을 것이 뻔하지만, 나는 하은이의 표정이 너무도 대견하여 "이거 하은이가 다 만든거야? 정말 맛있겠다"하고 장단을 맞추어 주었더니 '그럼! 하은이는 언니니까 쿠킹을 잘 해. 하은이는 베이비 아냐"라며 다시 한 번 으스대는 것이 아닌가 ㅋㅋ   



하은이가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진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마침 매주 금요일은 프리스쿨에서 '쉐어링 데이'라고 하여 집에서 책이나 DVD 등을 보내 주면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는 그런 날이었다. 나는 그동안 하은이 아빠가 하은이를 위해 만들어준 동물 papercraft 몇 개ㄹ를 싸서,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면서 하은이 아빠가 이번 10월에 유치원에서 배우는 동물들을 주제로 종이모형을 만든 것인데 보잘 것 없지만 친구들하고 같이 놀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의외로 친구들이 종이로 만든 오리며 박쥐, 곰, 너구리, 고래 등을 보면서 많이 좋아했나 보다. 아이를 픽업하러 갔더니 선생님께서 "하은이 어머니, 오늘 보내주신 종이모형을 친구들이 너무 좋아해서 하은이가 아주 신났어요"하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하은이가 연신 "이거 우리 아빠가 만들어 준거야. 어때? 엇있지?"하며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단다 ㅋㅋ



하은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한국계라서 영어를 따로 가르치친 않지만 매일 한 가지씩 크래프트를 하고 그걸 일주일 동안 교실에다 진열했다가 주말이 되면 한꺼번에 집으로 보내줘서 참 좋다. 그러면 나는 크래프트 박스 안에다가 매주 하은이가 만든 작품(?)들을 모아 두고는 가끔씩 꺼내서 하은이랑 얘기해 본다. 그러면 하은이는 별로 크지도 않은 두 눈을 부릅 뜨면서 그 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는지 침을 튀기며 어떻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곤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하은이는 별로 한 게 없다는 것을...ㅋㅋ  
아마 선생님들이 다 잘라놓고 만들어 놓은 것에 하은이는 풀이나 붙이고 색칠이나 좀 했겠지^^
엄마가 되고 나서 제일 웃기는 것은 이렇게 뻔한 것도 모르는 척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ㅋㅋ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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