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딱 한 번, 일주일 동안 주어지는 남편의 여름 휴가가 드디어 돌아왔다. 게다가 이번 휴가는 우리가 미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 휴가가 될 것이기에, 나는 이번 휴가를 이용하여 그동안 아끼고 아껴 왔던 히든카드(?)인 6박 7일간 동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렇다. 미국에 온지 벌써 3년 반이 지났건만 나는 그동안 '동부'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작년에 디즈니 크루즈를 위해 다녀온 플로리다는 '남부'로 생각하련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집에서 애들이랑 지내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나이아가라 폭포와 뉴욕, 워싱턴 D.C, 그리고 보스턴을 잇는 대장정을 어찌 감히 도전해 볼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와 내가 젤로 좋아하는 미드인 '가십걸'의 무대가 되었던 맨하탄을 비롯한 뉴욕, 그리고 죽기 전에 꼭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이르기까지, 미동부여행은 그동안 나의 로망이자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섯살과 두살 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과연 이 힘든 여행을 소화해 낼수 있을까 하고 자신이 없어질 때마다 '야 이년아! 너 한국가서 평생 후회할테냐!'고 나를 다그치곤 했다ㅋㅋ 

 

7월 27일. 새벽 3시. 우리 가족은 아직 칠흙같은 어둠 속을 뚫고 얼바인 집을 떠나 약 4시경에 LAX 공항에 도착했다(여행 초반부터 우리 아이들의 컨디션이 어떠했을지는 가히 짐작할만 하다^^) 그리고 새벽 6시 비행기를 타고 LAX를 출발하여 거의 6시간을 날아 미국 반대편에 있는 느왁(Newark)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첫 날은 그렇게 뉴욕의 한 공항에 도착한 후, 점심 겸 저녁의 애매한(?) 식사를 하고는, 다시 뉴저지에 있는 어느 호텔로 이동하여(뉴욕에 있는 호텔은 넘 비싸니깐^^) 여정을 풀고 잠자리에 드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7월 28일 일요일 아침. 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후 우리는 차를 타고 3시간 가량을 달려 드디어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 D.C에 도착함으로서 본격적인 동부관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 워싱턴 D.C.의 첫 관광 일정은 미국회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이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때 국회에서 인턴 및 정책비서 생활을 했었던(물론 그때의 기억은 그지같기 이를데 없다. 나는 그때 하도 험하고 드러운 꼴을 많이 봐서 지금도 국회의원 뉴스나 기사는 보지도 않는다^^) 우리의 윤요사, 미국회의사당이 여행 코스에 들어가 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ㅋㅋ

하지만 순진한 윤요사, 여행일정에는 버젓이 '국회의사당 투어'라고 써있었지만, 그것은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기는 커녕, 밖에서 그냥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는 코스였음을 알게 된 후, 뜨앗~ 할수밖에...  아니! 적어도 안에 들어가서 셀프 가이디드 투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하긴 나를 제외한 50여명의 다른 단체관광객들 중 안으로 들어가서 투어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의 윤요사는 급생각을 선회하기에 이른다... '그래, 여행일정표에 의하면 오늘 하루동안 국회의사당, 백악관, 자연사 박물관,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 링컨 메모리얼 파크 이렇게 6군데나 돌아야 하는데 어떻게 한가롭게 건물 안까지 누빌 수 있겠어? 한 곳만 깊게 둘러볼 바엔 차라리 대충 대충 돌아보면서 여러 군데를 뛰는게 나을 수도 있어' 라고 ㅋㅋ  

 

그리고 이것 봐! 아예 내리지도 않고 국회의사당 주변을 그저 덕보트(수륙양용차)나 더블 덱커를 타고 둘러보기만 하는 프로그램들도 있는걸 뭐 ㅋㅋ

 

다음 목적지는 워싱턴 D.C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이란다.

이 역시 스미소니언(Smithsonian) 박물관 그룹 중 하나인데, 요즘엔 아래 광고판에서도 볼 수 있듯이 Gem and Mineral 전시도 같이 하고 있나보다. 가이드 아저씨 왈, 영화 타이타닉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목에 걸고 나왔던 다이아몬드 목걸이도 전시되어 있다니, 어디 한 번 구경해 주실까나?^^

 

안으로 들어가 보니 로툰다((Rotunda)에 이렇게 큰 코끼리가 전시되어 있다. LA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 중앙홀에는 공룡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것만 빼고는 로툰다의 모습도 상당히 비슷하네~

 

먼저 자연사 박물관 방문 본연의 취지를 살려, 공룡이나 동물들을 좀 감상해 주시고...

 

이제 원석 및 보석 전시 코너로 한 번 가볼까나?  한참 공주병에 빠져 있는 우리 하은이도 예쁜 목걸이와 귀걸이의 재료가 되는 원석을 보니 너무도 좋아라 한다. 

 

아니, 근데 여긴 왜 이렇게 사람들이 붐비는겨?  아하! 이게 바로 그 호프 다이아몬드(Hope Diamond)인가 보구나! 경비원들이 다이아몬드 주변을 삼엄하게 지키는데도, 다들 사진기와 아이폰을 들이 대고 찍느라고 관광객들이 아주 난리가 난걸 보면 이게 유명하긴 유명한가보다^^

 

다음 코스는 오바마 오빠가 사는 백악관(The Whute House)!

우와~ 우리의 윤요사, 예전엔 회사 다닐 적에 울 회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어느 장애우 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청와대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여기 백악관은 청와대보다도 훨씬 넓고 화려하겠지? 주요 건물들이야 보안 때문에 들어갈 수 없을지라도, 운이 좋으면 미셸 오바마 여사가 키운다는 텃발이라도 구경할 수 있을지 몰라... 라고 기대를 만빵하면서 버스에서 내린 것까진 좋았는데...

젠장! 이게 웬일인가? 청와대랑 비교해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가이드가 백악관 앞문으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생뚱맞게 백악관 뒤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그냥 이렇게 밖에서, 그것도 백악관 정문 쪽도 아니고 뒤쪽을 배경으로 겨우 사진만 몇 장 찍는게 전부란다... 아~ 관광회사들의 상술이여! (그래서 나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사진에서도 썩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는 ㅋㅋ )

 

게다가 우리처럼 저 코딱지만한 백악관 건물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보겠다고, 어찌나 사람들이 계속해서 몰려 들던지, 이 사진도 줄서서 찍어야만 했다 T.T

 

네번째 코스는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 무슨 그리스 신전 같이 생긴 요런 건물에 들어가면  

 

중앙에는 미국 독립선언서의 주요 저자였던 토마스 제퍼슨의 큰 동상이 서있고 이 동상을 둘러싼 둥그런 외벽에는 그가 쓴 글들이 발췌되어 적혀져 있었다.

 

제퍼슨 기념관의 계단에 앉으면 호수 건너편으로 백악관(사진 중앙에 나무 사이로 살짝 보이는 바로 저 흰 건물! ㅋㅋ)과 워싱턴 마뉴먼트(Washington Monument)가 선명하게 보였다.

 

다섯번째로 우리가 찾은 곳은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Korean War Memorial)가 있는 곳이었다. 사실 처음에 여행 일정표에서 이 코스를 봤을때는 '에구~ 인기도 없는 코스일텐데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서 어쩔 수 없이 코스에 넣었나보다... ' 하고 생각했었는제 막상 들어가보니 절대 그렇지 않았다.

이 추모공원은 한국전에 참전한 150만명의 미군과 적십자사 소속 자원봉사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데, 정작 전쟁 당사자국인 한국 사람들은 6.25에 대한 추모와 기억이 점점 식어가는데, 오히려 미국에서는 이렇게 수도 한복판에가다 이런 상징물을 만들고 지나간 전쟁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부끄러울 정도였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의미심장한 글과 함께

 

공원을 아우르는 회색 돌판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죽은 병사들의 모습들이 특수 코팅되어 그려져 있었다.

 

바닥에 새겨져 있던 짧은 글귀와

 

완전 군장을 한 채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의 지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수십 개의 동상들을 보면서, 나는 당시 이름도 잘 모르는 다른 나라의 전쟁을 도와 주러 왔다가 목숨을 잃고 간 그들이, 그리고 그들을 잃은 가족들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라 가슴 한 켠이 괜히 먹먹해졌다.

 

우리 나라의 수도에도 이런 추모의 공간이 없는데 오히려 미국의 수도 한복판에는 이런 공간이 있다니...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냥 둘러 보고 가는데 그치지 않고, 여기 저기서 투어 가이드를 신청하여 한국전의 의미와 그 영향 등을 주의깊게 듣는 모습을 보며 새삼 놀랍기도 했다.  이 여자분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설명하던지 그 열정이 지나가던 한국 사람인 나조차도 귀를 기울이게 할 정도였다^^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링컨 메모리얼 파크 도착!  아까 갔었던 제퍼슨 기념관 보다도 훨씬 크고 멋지게 생겼다. 참! 이곳은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 이라는 연설을 한 장소로 유명하기도 하다.

 

건물을 뒤로 하고 계단 앞에 서면 이렇게 맞은편에 연못 너머로 워싱턴 모뉴먼트가 그림처럼 보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네의 눈에도 익숙한 에이브라함 링컨의 웅장한 동상과 

 

벽면에 쫘악~ 적혀진 그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문이 눈에 들어온다.

 

찌는 듯한 더위에, 어린 아이들을 업고 안은채 이 미친 일정을 단 6시간만에 소화해 낸 윤요사가 오늘의 소회를 간단히 말하자면... 사실 윤요사의 동부 입성에 대하여 뭔가 거창한 의미 부여를 하고 싶지만 당연 그런 건 절라리 없고...

그냥  맨날 캘리포니아 한쪽 구석의 시골마을(?) 얼바인 근방에서만 지내다가 이렇게 미국의 수도에 와보니, 괜시리 들뜨고 신나는 것이 뭔가 시골 소녀가 서울에 상경해서 뭣모르고 헤벌레 좋아하는 그런 기분이랄까?^^  (우습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은 들어가보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ㅋㅋ)

하긴 하은이는 또 어떻고! 내가 하은이에게 '하은아! 여기는 워싱턴 디씨라고 미국의 수도야. 너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 알지?' 하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우리 하은이 왈 '당연히 알지, 엄마! 워싱턴 대통령의 라스트 네임이 디씨 잖아' 뜨앗! 야 이년아, 그게 아니라 초대 대통령 이름은 조지 워싱턴이거덩? ㅋㅋㅋ  

어쨌든 내일은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들어간단다. 아싸라비야! 아무래도 오늘 밤은 너무 설레서 잠이 안올테니 일찌감치 수면제 한 알 복용하고 약기운을 빌어 잠을 청해봐야겠다^^

                                                                                --- 이상 B급 감성 시골 아짐 윤요사의 서울 구경기 끄읕!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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