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쉼'이란 이 한 장의 사진과도 같다. 즉 나에게 여행이란 쉬러 가는게 주목적이 아니란 뜻이다. 나에게 '쉼'이란, 비록 손바닥만한 거실이지만 집에서 뒹굴거리며 이렇게 퍼질러 있는 것이 가장 훌륭한 휴식이고,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그런 일상이 싫어졌을때 무언가 특별한 것을 배우러 그리고 느끼러 가는 일종의 전투적(?)인 일정인 것이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뒹굴거리며 신문을 보던 나는, 신생 여행사인 '넥스트 투어'라는 곳에서 워싱턴 주와 오레건 주를 연계한 3박 4일짜리 여행상품을 내놓은 것을 보고는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사실 평소 나는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 말구, 그 위에 있는 태평양 북서부(Pacific Northwest), 즉 워싱턴 주와 오레건 주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이 두 지역은 그룹 투어 상품이 전무하여 그동안 아예 포기한 상태였는데, 이제야 그 여행 상품을 발견한 것이다.  

그 다음은 남편 휴가가 문제인데... 사실 남편은 여름 정기 휴가를 다녀온 직후라 더이상 휴가를 쓸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나는 긴 고민 끝에 남편에게, 하은이와 주은이는 물론 시엄니와 얼마 전 놀러 오신 당신 누나와 조카까지 내가 다 데리고 여행을 다녀올테니, 그동안 당신은 혼자 회사 다니며 열심히 돈벌고 있을 수 있겠냐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남편은 예상외로 걱정말라며 나보고 잘 다녀오라하는 것이 아닌가?(아마도 자기 어머니와 누나, 그리고 조카까지 데리고 간다니 그랬나보다 ㅋ)  어쨌든 남편, 미안해! 내가 당신 대신 다녀올께. 부부는 일심동체라잖아? ㅋㅋ 

 

그렇게 해서 나와 시엄니, 하은이, 주은이, 그리고 형님과 조카, 이렇게 우리 여섯 명은 8월 13일. 아침 일찍 얼바인 인근 존웨인 공항에서 씨애틀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2시간 좀 넘게 날아 우리가 도착한 곳은 씨애틀의 '씨택 공항(Sea-Tac, Seattle-Tacoma Airport)'이었는데,

우린 거기서 우리를 마중 나오신 가이드분과 기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탈 차량은 벤츠에서 만든 이 최신형 밴이었는데, 어찌나 차량의 상태가 좋은지 그동안 내가 미국 와서 여러 그룹투어를 경험했지만 이 밴만큼 좋은 밴은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는 ㅋㅋ 어쨌든 이번 여행은 출발부터 기분이 좋다. 헤헤~  

 

가이드분은 오늘은 워싱턴주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 씨애틀을 둘러 본 후, 워싱턴의 주도인 올림피아(Olympia)로 가서 호텔에 묵을 예정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여기서 일정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는 오늘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파이크 플레이스'를 구경한 후, 수륙양용차인 '덕 보트'를 타고 씨애틀 곳곳을 둘러 보는 '덕 보트 투어'를 즐기고, '스페이스 니들'에 올라가 시애틀의 시내 경치를 바라보는 일정이다(항공사 보잉에서 세웠다는 '비행 박물관'은 맨 마지막 날 보기로 했다).

 

씨애틀은 모두 잘 알다시피, 영화 '씨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나와서 유명해진 도시다. 미국 내에서도 영국 런던처럼 언제나 비가 많이 내리는 도시로 유명하기도 하다. 나는 지난 몇 년간 수차례나 씨애틀 여행을 계획했지만 9월부터 6월까지는 비도 많이 오고 날씨도 춥다기에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는 힘들 것 같아서, 날씨가 가장 따뜻하고 비도 적게 온다는 7, 8월을 무지 기다렸는데, 다행히 오늘 날씨는 정말 굿~굿~굿~이다.

먼저 1907년부터 명성을 이어온 시애틀 최고의 재래시장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으로 가보자. 여기엔 그 유명한 스타벅스 1호점이 있단다. 나는 예전에 한국에서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 보곤 했는데 그때 씨애틀 편을 보면서 이곳 스타벅스 1호점에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오늘 나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스타벅스 1호점은 실제로 보니, 이처럼 생각보다 훨씬 소박하게, 아니 소박하다 못해 초라하게 생겼다.

 

사람들이 이렇게 나래비로 줄을 서있지 않으면 누가 봐도 그냥 평범한 스타벅스 샵으로 오해할 것 같다.

 

매장 안도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이 많은 줄을 보고 여기서 커피 한 잔 사먹는 건 그냥 깔끔히 포기했다. 여기서 줄서서 커피 사먹을 시간에 빨리 씨애틀을 한 군데라도 더 둘러봐야 하니깐^^ 

 

이젠 재래시장으로 한 번 눈을 돌려 볼까? 먼저 시장 밖의 풍경은 이렇게 생겼다.

 

씨애틀이라서 그런지 재래시장의 겉모습도 참 이쁘다. 이처럼 파라솔과 행잉부케들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으니 말이다. 이곳의 명물이라는 '레이첼'이라는 예쁜 이름의 청동 돼지상 사진도 한 컷! 

 

이젠 진짜 재래시장 안으로 들어가 보자.

가이드 아저씨 왈, 여기 물건들은 단순히 어디서 도매로 떼어와서 파는게 아니라 전부 상인들이 직접 키우거나 만든 것들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전시된 물건들에서 남다른 기운(?)이 뿜어나오는 듯 하다. 자기가 만든 물건들을 설명하는 상인들에게서도 마치 예술가와 같은 자부심이 느껴짐은 물론이다. 

 

여긴 예전에 '걸어서 세계 속으로' 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나왔던 생선 가게. 생선을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손질하여 터프하게 던져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여기서 기념으로 무얼 살까 고민하다가 결국 씨애틀의 특산품이라는 요 초컬릿 체리를 샀다. 초컬릿 안에 여러 종류의 베리류들을 넣은 것인데 참 절묘하게 맛있었다.

나는 이곳에서만 이 상품을 파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씨애틀 국제 공항에도 이 상품이 들어가 있었다. 아마 씨애틀에서는 꽤 유명한 초컬릿인가보다.

 

다음은 덕보트를 타고 씨애틀 시내 투어를 해볼 차례다. 이 덕보트 투어는 사실 강을 끼고 있는 도시라면 어디라도 있는 관광상품이지만, 특히 이 씨애틀에서는 더욱 유명한 필수 코스라고 한다.  

 

이 덕보트 투어는 나래이션을 하면서 운전도 하는 기사 아저씨의 원맨쇼에 상당 부분 재미가 좌우되므로 이 기사 어저씨를 잘 만나는 것이 우선 관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운아였다. 우연히 승선한 이 덕보트의 캡틴, '보(Beau)' 아저씨는 다소 썰렁한 관객들의 리액션에도 불구하고 매우 노련한 테크닉을 선보이며 우리를 아주 재밌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캡틴 보 아저씨는 먼저 시내 도로를 달리면서 좌우에 펼쳐지는 여러 가지 씨애틀의 명물들에 대하여 자세하게 얘기해 주었다. 얘기를 이끌어 가면서 농담도 던지고, 이렇게 귀여운 모자를 여러 번 갈아 쓰면서 몸개그 실력도 발휘해 주셨다.

 

이곳은 EMP(Experience Music Project) 뮤지엄이란다. 빌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 소프트를 공동창업한 폴 앨런이라는 사람이 만든 박물관인데, 그는 요 현수막에 나와 있는 시애틀이 낳은 천재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물론 무식한 윤요사는 절대 모르는 사람이다 ㅋㅋ).

어쨌든 EMP 박물관은 그 겉모습이 열라 아방가르드하게 생겼다. 기타를 형상화한 건축물이라는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한편 파이크 플레이스에서 해안을 향해 언덕을 내려가면 52번 부두에서 70번 부두까지 다 만날 수 있다. 설명 상으로는 59번 부두가 가장 번화하다는데 내가 찍은 건 66번 부두 모습 되시겠다.

 

여긴 씨애틀 아트 뮤지엄이다. 정문 입구에 있는 대형 조형물인 '망치질하는 사람(Hammering Man)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망치를 든 손이 1분에 4번씩 움직이는 동작을 통해 노동의 신성함을 표현한 작품이라는데, 서울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에도 설치되어 있어 우리에게도 낯익은 작품이다.

 

그리고 요건 '씨애틀 매리너스'라는 야구팀의 retractable roof 스테디움. 나야 뭐 야구 문외한이지만 미국 사람들은 야구를 워낙 좋아하니깐 이 경기장도 씨애틀의 손꼽히는 명물 중 하나라고 한다.

 

또한 씨애틀 거리를 지나다 보면 이렇게 트램카 혹은 트롤리라 불리우는 rail vehicle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일반인의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또 이렇게 씨애틀의 별명인 '에메랄드 시티'라고 쓰여 있는 개방형 트롤리는 관광상품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제 보 아저씨가 운전하는 우리의 덕보트가 강물로 들어갈 차례이다. 이 지점에 이르자 한 20분 정도 육지를 달리던 우리의 덕보트는 갑자기 바퀴를 집어 넣고 순식간에 배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강물에서 바라보는 씨애틀의 모습은 육지에서 본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 감격을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운데 배를 타고 바라본 모습이 더욱 운치있었다고 해야 할까? ^^ 

 

게다가 자세히 보니, 강물 주변에는 Floating Homes, Houseboat라고 불리우는 집처럼 생긴 배들이 많이 떠다니고(?) 있었는데, 아마도 부자들이 이 집처럼 생긴 배를 구입해서 별장처럼 활용하는 듯 했다.

 

이제 1962년 세계 박람회가 열렸던 '시애틀 센터'와 '스페이스 니들'로 가보자.

먼저 스페이스 니들은 605피트 높이의 첨탑인데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520피트 지점의 전망대에 오르면 시애틀의 시내 전경은 물론 눈덮인 레이니어 산의 장관까지 볼 수 있는 명실공히 씨애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이스 니들 전망대에서 주은이가 '엄마, 높이 올라오니 훨훨 나는 나비가 된 것 같아요~'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페이스 니들에서 바라 본 시애틀의 풍경. 서부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도시가 있었구나... LA와는 비교도 안되게 깨끗하고 멋진 시내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말그대로 넋을 잃고 말았다. 좋아! 내가 본 도시 중 동부는 보스턴, 서부는 씨애틀을 최고의 도시로 인정하노라~!!!

 

그리고 나는 스페이스 니들 1층에 자리잡은 멋진 기념품 샵에 들러, 아래의 장식용 접시를 한 개 샀다. 세금 포함해서 20달러쯤 주었는데 지금 이 블로그를 쓰고 있는 내 책상 앞에 턱~하니 자리잡고 있다^^ 

 

스페이스 니들에서 내려온 우리는 바로 옆에 위치한, 1962년 세계박람회가 열렸었고 지금도 시애틀 문화의 심장이라는 씨애틀 센터에 잠깐 들러, 결국엔 스타벅스의 본고장인 씨애틀에서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을 기어이 목구멍으로 넘겨 주시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굳이 스페이스 니들 전망대에 올라 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저 멀리 마운트 레이니어가 선명하게 보였다. 가이드 아저씨 왈 씨애틀은 항상 비가 내리고 어두침침한 분위기인데 1년 중 이렇게 날씨가 맑아서 마운트 레이니어가 보이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란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시댁식구와 어린 애들을 데리고 먼길 달려온 이 얼바인 윤요사를 불쌍히 여기셔서 이렇게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셨나보다(끔보단 해몽 ㅋㅋ).

 

이래서 난 그룹투어 예찬론자다. 남편 없이도 그리고 내가 운전하지 않고도 하루 동안에 많은 곳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놀며 쉬며 아이들 컨디션 다 맞춰가며 여행 다니가단 몇 군데 못 돌아보기 일쑤다. 일단 돈을 내고 여행을 떠났으면 최대한 많은 곳을 밟고 와서 본전을 뽑아야 한다(쯧쯧... 이런 무식한 표현이 있나 ㅋㅋ) 는 것이 나의 신조이다.

난 여행 전, 여행 책자를 적어도 두 세번 이상 정독하는 편인데, 책을 통해서 내가 가볼 곳의 역사와 특징을 최대한 미리 공부하고, 여행을 다니면서는 늘 지도를 가지고 돌아다니면서 전체적인 위치와 모습을 확인한 후, 최대한 사진을 많이 찍고 돌아와서, 집에 와서는 이렇게 그 내용들을 블로그로 정리하면 생각보다 여행의 기억이 오래 남는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행은 나에게 매우 만족스런 여행이었다. 그룹투어라고 명명하기도 좀 민망한 10명의 사람들만 모여서 편안한 차량을 타고 내 맘에 꼭드는 일정대로 씨애틀을 둘러볼 수 있어서 말이다. 

내일 둘러볼 올림픽 내셔날 파크도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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