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커텐을 열어 초미의 관심사(?)인 오늘의 날씨를 확인했다. 다행히 어제처럼 비가 내리지는 앉았지만 언제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비가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나는 아이들을 씻기고 입히고 먹여서 다시금 설레이는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오늘의 첫번째 관광지는 워싱턴주 남부에 있는 '세인트 헬렌스 화산 준국립공원'(Mt. St. Helens National Volcanic Monument)이다. 밴을 타고 달리다 보니 도로 너머로 구름에 산봉우리를 숨긴 '마운트 세인트 헬렌스'가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은 겨울철에는 눈으로 뒤덮여서 보통 6월 초부터 10월 중순까지만 일반 차량의 통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 세인트 헬렌스! 내가 지금 너에게로 가까이 가고 있단다. 내가 올라갈 동안 그 구름 다 걷어내고 너의 산봉우리 모습을 나에게 꼭 보여 주어야해~~~ 

 

사실 마운트 세인트 헬렌스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으나 미국, 그중에서도 워싱턴주에서는 매우 유명한 산이다. 그 이유는 비교적 최근인 지난 1980년 5월 18일, 화산 대폭발로 인하여 산꼭대기 부분의 400여 미터가 공중으로 날아가 버리는 화산 폭발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러한 대참변을 겪은 이후 세인트 헬렌스는 지난 30여년간 스스로 자연 치유의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꼬불꼬불한 도로를 한시간 이상 달려 우리는 마운트 세인트 헬렌스의 '존스턴 리지 전망대(Johnston Ridge Observatory)'에 올랐다. 이 전망대의 이름은 화산 폭발 당시 죽음을 당했던 한 지질학자의 이름인 '존스턴'을 기념하여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건 당시 잔스턴이 화산 활동을 관찰하던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아직 화산이 폭발하기 전의 것이라서, 마운트 헬렌스의 산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인다.

 

1980년 5월 18일 일요일 오전 8시 30분경. 당시 조만간 이 산이 폭발할 것이라는 예측 때문에 여러 지질학자들과 사진작가 등이 산 부근에서 화산의 동태를 유심히 관찰하던 중이었는데, 당시 산으로부터 6마일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화산활동을 관측하고 있던 미국지질학회의 데이빗 잔스턴의 흥분된 목소리가 무선전화를 통해 들려옴과 동시에 큰 폭음과 함께 통신은 끊기고 화산재가 온 인근을 뒤덮었다고 한다.  

화산 폭발로 인해 봉우리로부터 반경 6마일 이내의 숲은 불타는 화산재와 가스로 완전히 뒤덮이고 당시 이를 관측하던 지질학자와 사진작가, 기자 등 57명이 일순간에 희생되었는데, 존스턴 리지 전망대에 가면 당시 이들이 촬영한 최후의 순간들이 사진으로 잘 남아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여행 책과 가이드의 설명, 그리고 전망대의 자료 등을 통해서 여러 각도에서 접하면서 큰 감동(? 아님 슬픔?)을 받았다. 물론 그들도 자신들이 정말로 그렇게 죽을지는 몰랐겠지만, 적어도 죽을 수 있다는 각오는 하고서 관측에 임했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당시의 그들처럼 지금의 내 삶에 혹은 내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지 의문이다 T.T

 

그렇게 인생에 대한 자세가 불성실한(?) 내가 와서 그런지, 오늘 세인트 헬렌스는 그 봉우리를 구름 속에 감춘 채, 좀처럼 속살을 보여 주지 않았는데,

 

그래서 구름 걷힌 산봉우리의 모습은 이렇게 사진으로 대체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산이 자기 정상을 안보여주니, 나도 여기 자연을 훼손(?)하는 인물 사진 몇 장 들어가련다~ ㅋㅋ

 

요건 이번 여행을 통틀어 우리 가족이 모두 나온 떼거지 인증샷 되시겠다.

요즘같은 시대에 시엄니 모시고 산다고(사실 시엄니한테 얹혀 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수도 있다ㅋㅋ) 나에게 늘 잘 해주시는 울 형님, 그리고 고된 며느리살이(?)에 마음고생이 많으신 울 시엄니, 그리고 남편 없이 얼라들 데리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느라 얼굴 많이 상한 나까지~ 조카와 주은이는 물론, 시종일관 방방 뛰어대다가 이 사진을 찍기 직전 나한테 따끔하게 혼나 시무룩한 하은이의 표정까지도 넘 귀엽다 ㅋㅋ

 

 

 

우리는 내친 김에 잔스턴 리지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 30여년 전 발생한 화산폭발과 그로 인한 세인트 헬렌스의 자연치유 과정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까지 관람했다.

워낙 사연을 많이 간직한 폭발이어서 영화 역시 매우 감동적이었는데 특히 영화가 끝난 직후, 커튼이 일제히 올라가면서 화산 폭발로 산봉우리가 날아간 세인트 헬렌스의 모습이 창문 밖으로 장엄하게 드러나는 엔딩은 우리의 감동을 두배로 만들어 주었다.  

 

이제 그 감동을 뒤로 하고, 우리는 Oregon주로 향했다. 바로 포틀랜드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사실 오리건주의 주도는 세일럼(Salem)이지만 가장 유명한 도시는 포틀랜드이다. 컬럼비아 강(Columbia River)과 웰러멧 강(Willamette River)의 합류지점에 위치한 포틀랜드는 여름철에는 화려한 장미축제가 유명하여 흔히 '장미의 도시(City of Roses)'로도 불린다. 그 밖에도 도시를 관통하는 월러멧 강 위로 예쁜 다리가 많아 '브리지 시티(Bridge City)' 혹은 '맥주의 도시'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월러멧 강 위에서 신나는 제트보트를 타며 포틀랜드의 멋진 브리지들을 맘껏 구경할 예정이다.

 

안뇽하세요~ 선장님!  저, 얼바인 윤요사에요~ 오늘, 신나는 운전 부탁드립니다~ 

 

사실 워낙 제트보트가 빠르고 물도 많이 튀어서 사진 찍는게 거의 불가능했는데, 그 와중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사진 몇 장을 올려본다.

날씨가 더 좋았다면 사진이 예쁘게 나왔을테지만, 그래도 비가 오지 않은 상태에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난 감사하련다.

 

제트보트를 타기엔 너무 어리다는 직원들의 만류에도 바락바락 우겨서 제트보트에 오른 우리 주은이. 선장님이 묘기를 부릴 때는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가도, 다시 엔진이 조용해지면 바로 이렇게 해맑은 웃음을 지어 주신다. 

 

이제 월러멧 강에서 신나게 놀았으니 다음은 콜럼비아 강의 경치를 감상하러 가보자. 푸른 평야와 낮은 구릉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콜럼비아 강을 보니 내가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콜럼비아 강의 풍경은 바로 이 비스타 하우스(vista house) 앞에서 봐야 제격이라고 한다. 이 비스타 하우스는 밖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건물 내부 역시 매우 잘 꾸며져 있었는데, 콜럼비아 강 풍경의 변천 모습과 그간의 역사적 사실들을 알리는 자료는 물론, 예쁘게 꾸며진 기념품 샵까지 뭐 하나 나무랄데가 없었다.  

 

비스타 하우스를 뒤로 하고, 우리는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멀트노마 폭포'에 도착했다.

 

사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나서 웬만한 폭포계(?)는 다 졸업한 나이지만 그래도 이 폭포, 참으로 운치있다. 폭포의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다 멋있는 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멀트노마. 그리 크지 않은 폭포이건만, 나무와 다리 등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우러져 정말 이쁘지 않은가?^^

 

이렇게 오늘 나는 화산 폭발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마운트 세인트 헬렌스와 포틀랜드의 아름다운 브리지를 감상하는 월러멧 강의 제트보트 투어, 그리고 비스타 하우스에 들러 콜럼비아 강의 경치를 감상하고 마지막으로 그림같은 멀트노마 폭포 아래서 맛난 아이스크림와 커피를 먹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요 며칠간 나는 늘 해오던 것처럼 새벽 5시 50분에 일어나서 남편 아침밥을 차리지 않아도 되었고 또 남편과 하은이의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었다. 그 뿐인가! 아이들을 학교로 보낸 후, 나의 아침은 향긋한 커피향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그 날의 국을 끓이기 위하여 비린내나는 멸칫국물을 우리는 일부터 시작되는데(우웩! 진짜 이 생활 구리다 ㅋ) 여행을 오니 그런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또 좋았다.

이제 내일 저녁이면 다시 얼바인으로 돌아가겠구나... 집으로 돌아 가는 건 좋지만, 그런 일상으로 복귀하는 건 정말 싫다. 하지만 지난 3일간 햇반과 종가집 김치로만 버티며 돈을 벌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돌아가긴 가야겠구 ㅋㅋ

내일은 이번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마운트 레이니어'에 가기로 되어 있다. 날씨가 오늘보다는 좀 더 맑았음 좋겠다^^*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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