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스터가 돌아왔다. 내가 그동안 이스터를 많이 기다린 이유는 (뭐 홀리한 기독교인이라서가 아니라) 현대자동차 미주법인이 다른 미국 회사들에 비해서 그나마 관대하게 주는 휴가가 바로 이스터 휴가이기 때문이다(다른 회사들은 대개 토,일 이외에 하루만 더 휴가를 주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현대차는 금,월까지 이틀이나 휴가를 주기 때문에 잘 만하면 3박 4일 휴가도 가능해진다^^). 그래서 지난 몇주간 나는 야심차게 요세미티&샌프란시스코 3박 4일 코스를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제자훈련을 받고 있어 신앙심이 뻗친(^^) 울 남편이 일주일 전, 부활절 예배는 물론 부활절 전 한주 동안 드려지는 고난주간 새벽기도와 성금요 저녁예배까지 빠지지 않고 드리고 싶다는 너무도 홀리한(?) 제안을 나에게 걸어온 고로, 겉으로는 불량신자이나 알고 보면 목사님 딸인 우리의 윤요사,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여 금요일은 사과마을 줄리안에, 토요일은 레이크 애로우헤드와 빅베어 레이크에 다녀 오기로 재빠르게 코스를 급변경하는 센스를 발휘해 주시었다. 우하하~ 윤요사의 이 놀라운 적응력!ㅋㅋ

그렇게 코스를 급변경하여 출발하게 된 사과마을 줄리안. 미리 가본 사람들로부터 어느 정도 입소문을 들어온데다 사전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하루 코스 일정을 머리 속에 싹 그리고 출발한 여행이었건만, 얼바인으로부터 편도 두 시간, 도합 왕복 네 시간의 여행에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오는데에는 굉장한 인내심과 체력이 필요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의 마음을 기뻐하셨는지 해발 2000미터 이상의 산속마을이었는데도 바람 한 점 없이 맑고 따뜻한 날씨와, 가고 오는 길이 전혀 막히지 않는 축복을 주셨던 기분 좋은 여행이었다.  

얼바인에서 약 1시간 정도 남쪽으로 향하는 프리웨이를 달리고 칼스베드 부근부터는 점차 좁아지는 꼬부랑 산길을 1시간 가량 더 달려, 우리는 딱 두시간만에 줄리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Julian은 시티 이름인데 10월 첫째 주는 사과 축제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꼭 그 시기에 가지 않아도 맘스 파이라는 매우 유명한 애플파이 가게가 위치해 있고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사과주스(cider) 공장은 물론, 오래된 흥미로운 박물관과 멋스러운 앤틱 샵, 그리고 미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아기자기한 거리가 있어 아무 때라도 가볼만하고 생각된다.

참! 만약 이 고즈넉한 마을이 대부분의 미국 관광지들이 그러하듯이 너무 넓고 볼 것 또한 드문드문하게 존재한다면 그건 좀 문제인데, 이곳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줄리안의 메인 스트릿은 매우 짧고 모든 볼 것들은 쫙! 몰려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누리는데 있어서 4시간이면 떡을 친다(뭐냐, 이 속된 표현은ㅋㅋ).

 

우리가 차를 세우고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바로 줄리안 시청. 표지석을 보니 1870년부터 있었던 마을이라는데 얼바인에 비하면 정말 그 역사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여기서 줄리안 시의 소개 책자 한 권씩 받아 챙겨 주시고,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마을 둘러보기~ 시작!

 

아, 참!  우리 아이들이 시청 계단 난간에 걸터앉아 찍은 사진 한 컷.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진이 참 맘에 든다. 하은이는 언니답게 동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고 주은이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난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쩍벌녀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유~ 이 깨물어 먹어도 시원치 않은 귀여운 것들 ㅋㅋ

 

타운 홀 옆에 있는 주민 게시판들을 보니 무슨 퀼트 강습을 한다는 소식부터 집을 판다는 내용까지 별별 게시물들이 많다.  3베드의 근사한 2층 집이 월 1200달러에 나와 있는걸 보니, 줄리안의 부동산 시세는 얼바인에 비해서 정말 싼 걸 ㅋㅋ

 

시청에서 맵을 받아든 뒤, 우리는 약 150년 전 골드러시를 따라 줄리안 마을을 개척했던 사람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긴 박물관으로 향했다. 겉은 이렇게 초라해 보이지만 안은 참 볼게 많았다. 만일 이 포스팅을 보고 줄리안을 방문하실 분들은 꼭 한 번 들러보시길 강추한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간만에 독사진 한 컷. 우악~ 머리도 부스스한데다 사진 찍어준 울 남편 말마따나 이젠 정말 레깅스 바지가 터지려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을 사랑하련다 ㅋㅋ

 

그리고 박물관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나의 두 보물들까지.

 

이곳은 박물관 내부 모습. 원래 박물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우리의 윤요사, 파워블로거가 되기 위한 야욕(?)에 관리자의 감시를 틈타 떨리는 손으로(ㅋㅋ 걸릴까봐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당) 사진 몇 장 찍어봤다.

약 150년 전부터 개척자들이 줄리안에 정착하며 살게 된 소중한 자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쓰던 가구들과 식기, 옷이며 책, 사냥도구는 물론 실감나는 동물 박제까지 세월을 거스른 삶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이제 세월의 흔적을 느꼈으니 다시 현재의 삶 속으로 돌아와 볼까나?

정원은 물론 실내 디스플레이까지 참으로 예뻤던 앤틱 샵. 말이 앤틱샵이지 남이 쓰다만 오래된 물건을 판다기보다는 '앤틱풍의 가구 및 소품점'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 어쨌든 이런 산골 마을에 이렇게 안목있는 앤틱샵이 있을 줄이야! 

 

앤틱샵 앞마당에서 우리의 윤요사, 터질듯한 다리 샷을 제거하고 상반신 샷만 다시 한 번 시도해 봤다(비록 울 남편은 이러나 저러나 구린 건 마찬가지라며 혀를 끌끌 찼다만ㅋㅋ). 돈 아끼려고 내 손으로 자른 어설픈 앞머리 하며, 어정쩡하게 어깨까지 자라 제멋대로 뻗쳐 버린 뒷머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어져 버린 외모이건만, 그래도 뭐 어쩌랴, 나중에 한국가서 돈 좀 들이면 괜찮아지겠지 모. 우하하~

사실 내 모습 뒤로 보이는 저 두 것들만 없었어도 내 외모가 이렇게 구려지지는 않았을테지만, 그래도 아이 둘과 지지고 볶는 지금의 삶이 그리 싫지는 않으니 나두 이제 아줌마가 다 되었나부다 ㅎㅎ

 

어이~ 우리 두 딸들! 이제 제발 철 좀 드세요! 둘째는 빨랑 기저귀 좀 떼고, 첫째는 어서 밤에 혼자 잠 좀 자고! 아랐지?

 

쥔장은 안의 디스플레이도 굉장히 깔끔하게 해 놓으셨다. 게다가 맘씨 좋게 생긴 백인 아줌마는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오느라 힘들었겠다며 진심어린 위로의 말씀도 아끼지 않으셨다.

 

이방 저방 둘러보며 우리도 나중에 저렇게 멋지게 꾸미고 살자며 쓴웃음을 지으면서 앤틱샵을 나온 우리 부부는 이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속 줄리안의 메인 스트릿을 조용히 걸어 보기로 했다. 산속 마을 줄리안에서 우리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면서, 지난 3년간 남편은 바쁜 회사 생활로 그리고 나는 아이들 라이드와 살림,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을 서로 위로받을 수 있었다. 

이 날, 우리가 즐겼던 줄리안의 고즈넉한 거리 풍경들.

 

하지만 이렇게 평화로운 마을처럼 보이는데도 그래도 여기가 관광지이긴 한가부다. 이처럼 관광객들을 위한 말이 끄는 마차들이 가끔 눈에 들어오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저 마차를 타지 않으리. 맨날 자동차만 타고 다니다가 이렇게 가족끼리 모처럼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 다니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그렇게 몇 십분을 걸었을까... 걸어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시장기가 몰려온다. 이젠 줄리안 마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맘스 파이 하우스에 들러볼 시간이다. 미국 3대 파이 집이라는 그 명성에 걸맞게 애플파이가 정말로 그렇게 맛있는지 오늘 이 몸이 몸소 검증해 주시겠노라.^^ 

 

인터넷에서 검색할때는 정말이지 건물 밖까지 줄이 길게 늘어선 진풍경의 사진들이 많았는데, 오늘이 이스터 직전 금요일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회사들이 아직 일을 하는 고로 줄리안 전체는 물론 이 유명한 파이집에도 사람들이 별로 없다. 오늘 같은 날 휴가를 준 현대차미국기술연구소(HATCH)에게 다시 한 번 심심한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ㅋㅋ

레스토랑 안은 이렇게 그림처럼 예뻤다. 그냥 무미건조하게 테이블만 좌악 깔아놓고 공장에서 애플파이 찍어내듯 미친듯이 팔아대서 돈을 많이 벌수도 있었을텐데, 주인장은 역시 멋을 나는 사람인가보다. 이렇게 가게 안을 아기자기하게 장식한 것도 모자라 여백의 미를 많이 추구한 걸 보니 말이다^^

 

가게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우리는 판매원의 추천을 받아 이 가게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파이 두 개를 주문했다. 그리고 사이드 메뉴로는 아이들을 위하여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참! 옆의 저 애플 주스! 정말 세상에서 먹어본 애플 주스 중에 젤로 맛있었다. 단것을 무지 싫어하는 울 남편도 사이다와 애플파이가 정말 맛있다면서 종이 그릇째 싹싹 먹어치웠다.

하지만 이 맘스파이 사장님은 장인정신만 있을 뿐 사업감각은 없나부다. 얼바인에 분점을 내면 저기 85도씨 베이커리는 저리가라 할만큼 최고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텐데... 그리고 그 프랜차이즈는 사업필 충만한 내가 운영하면 진짜 좋으련만 ㅋㅋ

 

여기, 애플파이 앞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울 남편과 두 딸의 모습.

 

이제 배도 불렀으니 2차 산책에 들어가 봐야겠다. 뭐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아까 12시 정오에 마을 전체에 멋진 종소리를 울려펴지게 했던 줄리안 히스토릭 소사이어티와,

 

 

줄리안의 메인 스트릿에 위치한 아담한 호텔,

 

그리고 제법 많은 종류의 물건을 파는 복합 상가(?)까지 우리 줄리안에도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그뿐인가. 이런 산속마을에 드레스가 왜 필요한지 몰라도, 무슨 드레스 샵에

 

이렇게 아기자기한 엠포리움도 짱짱한 볼거리를 과시하고 있었다.

 

하아~ 신선놀음을 마쳤으니 이제 속세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다. 하산 하기전 줄리안 기념품들을 좀 사가야겠기에 우리는 여기서 젤로 유명한 사이다 가게에 들렀다.

 

여기서는 사과잼이나 사과주스는 물론 과일을 그 자리에서 직접 말려 팔기도 하고 아이들을 위해 과일을 넣어 만든 젤리도 파는데 우리는 교회 순장,순모님께 드릴 사과주스 2병과 우리 가족을 위한 사과 주스 2병을 사서 차에 몸을 실었다.

 

다시 얼바인으로 돌아오는 길. 비록 간만의 여행에 몸은 많이 지쳤고, 아이들은 이미 곯아 떨어졌지만, 나는 덕분에 차길 양 옆으로 펼쳐진 넓은 구릉에서 소와 말, 그리고 그림같은 축사들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작년 11월 말 땡스기빙 휴가에 자이언 브라이스 캐년에 다녀온 이후 꼭 4개월만의 가족 여행. 그것도 하루 코스의 짧은 여행에 불과했지만 오늘 줄리안 사과마을 여행은 아마도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비록 차 개스비와 박물관 입장료 4달러, 그리고 싸구려 애플파이 두 개 밖에 안 사먹은 저렴한(?) 여행이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다람쥐 쳇바퀴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그 어떤 명소에 다녀온 것보다도 더욱 감동적이었던 그런 여행으로 말이다.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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