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드림호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로는 당연히 오전에 있었던 princess meeting을 꼽을 수 있겠다.

오전 9시 반경부터 드림호의 중앙 아트리움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공주들과 기념 사진도 찍고 그녀들의 autograph를 받으려는 어린 소녀들과 그 부모들로 점차 붐비기 시작했다. 사실 자칭 페미니스트이자 이 세상 모든 딸 가진 부모들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우리의 윤요사! 평소의 소신대로라면 결코 이딴 공주병 행렬에 합류해서는 안되지만(ㅋㅋ), 공주가 되고 싶어하는 우리 하은이의 소원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을 잘 알기에, 나는 대리만족이라도 시켜주려는 애틋한 모정(?)으로 오히려 일찌감치 하은이의 손을 붙잡고 그 대열의 맨 앞에 합류하고야 말았다.^^ 

사실 각 공주별로 줄을 서야 한다면 하은이의 손을 잡고 어느 공주 앞에 서야 하나 밤새 고민을 좀 했는데(썅! 넌 이렇게 고민할 게 없단 말이냣...쯧쯧)  우리의 디즈니 크루즈사는 결코 그렇게 쪼잔하지 않았다. 대신 크루즈 측에서는 아래 사진처럼 일렬로 애리얼(인어공주)과 티아라(개구리 왕자에 나오는 공주), 벨(미녀와 야수), 오로라(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설공주, 신데렐라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주욱~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을 수 있도록 동선을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순서에 의하여 먼저 애리얼 공주를 만났다. 원래 인어공주는 밝은 색 계열의 빨간 머리와 물고기 꼬랑지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그런 측면에서 요 공주는 머리 색깔이 좀 어둡고 정체 불명의 드레스를 입은 관계로 기대 보나는 씽크로율이 좀 낮은 편이었다^^

 

다음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유일한 흑인 공주인 티아라 되시겠다. 하은이는 원래 개구리 왕자 애니메이션을 워낙 좋아해서 티아라 공주를 젤로 사랑했는데 오늘 드디어 그 공주가 나와서 빅허그를 해주니 너무 좋아서 아주 정신줄을 놓아버렸다(야! 니 엄마한테나 그렇게 안겨봐라. 젠장 ㅋㅋ)^^

 

다음 순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벨 공주. 그녀는 정말 얼굴이 조막만하다는 말을 실감케하는 전형적인 서구형 미녀였다. 

 

요건 사진이 흔들리게 나와서 아쉬웠던 오로라 공주(사진기가 싸구려라 그렇다고 애써 변명해 보지만 사실은 수전증인듯ㅋ)

 

그 다음은 가장 인위적인 웃음과 손동작으로 내 손발까지 오그라들게 했던 백설공주.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눈으로 볼 때, 그녀의 움직임은 철저히 계산된 동작들이었다. 아마도 여기 나온 공주들 중 가장 공주 알바를 오래한 사람이 아닐까 ㅋㅋ

 

마지막으로 벨 공주와 함께 씽크로율 100%를 자랑했던 신데렐라 공주. 그녀는 웃음마저도 천사같았는데, 백설 공주처럼 과도한 액션을 취하지도 않으면서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내친김에 나는 신데렐라와 함께 급조한 가족 사진도  한 장 찍어 보았다. 근데 우리 부부의 옷이 넘 구려서 살짜꿍 쪽팔림...

역시 크루즈는 쫙 빼입은 드레스와 수트가 생명인데, 우리의 윤요사, 어린 얼라들과 LA에서 올랜도까지 장시간 비행을 한다는 핑계로 짐을 줄인답시고 옷에 신경을 너무 못쓴 티가 역력하다(흑흑... 나도 이런 환자복 내지 임부복 스따일 말구, 저 신데렐라처럼 파워 숄더 옷을 입고 싶었는뎅...)

 

프린세스 미팅이 끝나고, 우리 가족은 이번 디즈니 크루즈의 첫번째 기항지인 바하마의 수도 낫소(Nassau)에 내려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배 유리창 너머로 예쁜 낫소의 풍경이 보이자 나도 덩달아 마음이 설레였다.

 

배에서 내린 우리는 천천히 낫소를 향해 걸어갔다. 아... 무슨 도시가 이렇게 한 폭의 그림 같이 예쁘단 말인가..라고 감탄하면서.

 

낫소를 향해 걸어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탔던 디즈니 드림호가 한 눈에 들어 왔다. 안에서는 너무 커서 도저히 내가 배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나와서 보니 내가 타고 있었던 게 배이긴 했구나... 라는 다소 유치한 생각이 들었다.

 

여긴 나름 포토존이었으나 날씨가 너무 더운 관계로 내가 스킵해 버린 장소.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포토존 자체를 사진 찍다니 ㅋㅋ

 

우리는 이렇게 생긴 간단한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여

 

드디어 낫소 시내에 입성하였다. 하지만 나는 돈 아낀다고 유료 시내 투어를 사전에 예약하지도 않은데다, 원래 계획대로 셀프 가이드 여행을 즐기기에는 이 날 날씨가 너무도 더워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우리 일행은 최대한 빨리 배로 돌아가자는데 만장일치로 합의를 보았는데

나는 이 날, 너무 후텁지근해서 숨을 쉬기도 힘들다는 생각을 최근 10년 동안 거의 처음으로 해본 것 같았다.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그저 태양만 강렬하게 내리 쬐기 때문에 그늘만 찾아도 시원한 편인데, 이 곳 올랜도와 바하마 지역은 한국의 삼복더위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너무 습하고 무더웠다.

그래도 너무 금방 배로 돌아가는 건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기를 쓰며 시내 중심가를 한 바퀴 대충 둘러봤지만 곧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배로 돌아와 버렸다. 사실 내가 사전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낫소는 올드 타운과 시청사 등이 아릅답다고 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ㅋㅋ

 

다시 배로 돌아온 우리 부부는 저녁 식사를 하고난 후, 라이브 쇼를 보기 위헤 주은이와 하은이를 각각 자기 또래의 널서리 클럽에 보내기로 했다. 사실 내가 휴가 계획을 세우면서 처음부터 디즈니 크루즈를 고려했던 이유도 주은이 또래의 아이들을 시간당 5달러에 맡아준다는 말에 혹했기 때문이었다^^

먼저 주은이 같은 토들러 아이들을 맡아 주는 곳, 바로 "잇츠 어 스몰 월드" 되시겠다.

 

널서리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요렇게 입구에서 몰래쿵 찍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집념의 윤요사, 직원의 감시를 피해 최선을 다해 찰칵!^^

 

자신이 곧 맡겨질 운명인 것도 모르고 마냥 신난 우리 주은이.

미안타, 주은아. 이 엄마가 라이브쇼 끝나면 바로 데리러 오마^^

 

그 다음은 하은이 차례. 여기는 4살부터 9살 사이의 아이들을 위한 또래 클럽인 Oceaneer Club이다.

 

여기 역시 내부 촬영 불가 지역이라서 한 차례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윤요사, 파워 블로거가 될 그 날을 꿈꾸며 간신히 몇 장 찍어 보았음 ㅋㅋ

나는 직원이 배치되지 않은 공간만 찍어서 사진상으로는 별로로 보이지만, 기실 이곳의 내부 시설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넓고도 훌륭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즈니 만화가 계속해서 상영되는 작은 극장과 맘껏 입어 볼 수 있는 디즈니 캐릭터 옷들과 소품들, 그리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과, 과학적 원리가 접목된 전용 놀이터까지 이곳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이제 라이브 쇼를 보러 가야지. 관람 장소는 바로 이 곳, 월트 디즈니 띠어러 되시겠다.

 

디즈니 크루즈의 라이브쇼는 원래부터 수준 높고 감동적인 걸로 유명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크루즈는 매일같이 다른 라이브쇼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첫째 날의 '골든 미키스'와 셋째 날의 '빌런스'는 하은이와 같이 관람했고 나머지는 우리 부부만 관람했다.

매일 밤마다 정말이지 멋지고 감동적인 무대들이 펼쳐졌는데, 개인적으로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보았던 "오 쇼" 보다 더 좋았다고 생각한다(물론 내 수준이 유치해셔 그럴 수도 있다... ㅋㅋ). 

 

디즈니 라이브 쇼는 지적재산권 등의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사진 촬영이 매우 엄격히 금지되어, 나에게 밀려온 감동의 쓰나미들을 전혀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T.T

 

특히 백설공주의 못된 여왕이나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 나오는 마법사, 인어 공주에서의 문어 마녀 등, 부득이하게 악역을 담당할 수 밖에 없었던 캐릭터들이 총출동하여 꾸미는 빌런스(villains)를 보며 나는 간만에 편견의 벽을 넘어 또 다른 상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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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쇼를 보고 난 후, 나는 선실의 침대에 누워 애들을 재우면서 오랜만에 상념에 잠겨 보았다.

대부분의 여행은 고생길이다. 그리고 돈도 많이 든다. 나처럼 이렇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서는 여행은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데 급급하여, 웬만하면 큰 일 도전하지 않고 소극적 혹은 방어적으로만 살아온 지난 수 년간을 돌이켜 볼 때, 이번 여행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위로"이자 또 다른 "도전"이었다.

아무리 아이들을 고려해서 나름 편안한 디즈니 크루즈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이번 여행은 나에게는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던가! LA에서 올랜도까지 장시간의 비행, 그리고 비싸게 지불한 금전적 대가는 물론, 배 안에서 18개월된 아이를 케어하는 일들까지 말이다. 

그래도 무조건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번 여행, 역시 디즈니 크루즈의 최대 수혜자는 하은이도 아니요 주은이도 아닌, 바로 나였다 ㅋㅋㅋ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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