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우리 가족은 매년12월이면 한국을 방문했었기 때문에 온가족이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2월이면 곧 한국으로 영구 귀국할 것이기에 우리 가족은 간만에 미국에서 모두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물론 울 남편은 여전히! 맨날! 아무 생각 엄따^^) 미국에서 보내는 이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하면 후회없이, 그리고 최대한 추억에 남도록 보낼 수 있을까를 엄청~ 고민하다 지난 11월, 드디어 리버사이드에 있는 '미션 인 호텔 앤 스파' 에 가기로 결심하고 예약을 완료했더랬다.

 

내가 오랜 기간의 무한 인터넷 서치 끝에 고른 '미션 인(Mission Inn) 호텔 앤 스파'는 1902년에 지어진 스패니시 양식 건축물로서, 예전에는 말그대로 미션이었지만 오늘날은 4개의 탑 티어 레스토랑과 239개의 객실을 갖춘 명성있는 호텔로 리모텔링되어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이곳은 현재 미국 국립사적지(U.S. 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보존되고 있을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그래서 정식으로 투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을 정도다^^)일 뿐 아니라, 예전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부가 허니문을 즐긴 곳이자 리처드 닉슨 대통령 부부가 이곳 채플에서 결혼식을 올린 사실로도 유명하다. 

 

특히 미션 인 호텔 부근에서는 12월 초부터 1월 초까지 'Riverside Festival of Lights' 이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 축제는 인근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연례 행사로 손꼽히곤 한다. 매년 12월, 수 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이 축제가 열리면, 무려 400만개가 넘는 오색 전구로 미션인 애비뉴 선상이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불야성을 이룬다고 하니, 우리의 윤요사! 어찌 이것을 놓칠소냐~ ^^ 

 

어쨌든, 우리 가족이 얼바인에서 차로 약 45분 가량을 달려 시티 오브 리버사이드에 도착한 건,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후 3시경이었다. 나는 미션 인에 도착하자마자, 미션 인 주변의 풍경을 해가 지기 전 모습과 야경으로 나누어 비교해 보고자, 호텔 체크인을 먼저 하지 않고 짐들을 차 안에 그대로 둔 채, 아이들과 함께 미션 인 주변을 신나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먼저 넓은 호텔 외벽을 빙 돌아 걸어가며 호텔 외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봤다. 사진기를 들이댈 때마다 하얏트, 메리어트, 리츠 칼튼 등 천편일률적인 초현대식 호텔 체인들과는 달리, 비록 오래되었지만 고풍스런 미션 인 만의 분위기가 확~ 느껴져서 내 마음도 덩달아 흐뭇해졌다. 

 

이제 호텔 안으로 들어가 보자. 오늘이 미션 인 호텔의 최성수기인 크리스마스라서 그런지 호텔 곳곳의 데코레이션은 그 자체로 기냥~ 훌륭한 포토존이 된다. 

 

요건 호텔 안에 있는 레스토랑의 모습. 참말로 멋져 부린다. 이런 데서 밥 먹으면 월매나 분위기있고 또 맛날꼬~ ^^(내가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결국 여기서 식사를 못해봤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오늘 눈으로만 그리고 feel로만 여기서 식사한 셈 치련다^^)

 

호텔 레스토랑 뿐 아니라, 건물 내 로비와 원형 계단의 모습까지도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로맨틱하다.

 

이제 호텔 밖으로 좀 멀리 걸어가 볼까 한다. 그래도 명색이 첨으로 리버사이드라는 도시에 왔는데 어떻게 꼴랑 호텔 주변만 헤맬 수 있겠는가. 다리 힘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열심히 싸돌아 댕겨 봐야지^^

마침 거리 바닥에 그려진 지도를 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대충 머릿 속에 그림이 그려진다. 

 

여긴 무슨 차이니즈 공원이라는 곳이고,

 

요건 성당,

 

그리고 여긴 리버사이드 오디토리움(Auditorium)이란다.

 

리버사이드 박물관과

 

리버사이드 컨벤션 센터는 물론,

 

색색깔의 종이 장식이 인상적인 리버사이드 아트 뮤지엄(Riverside Art Museum)의 모습까지 참말로 귀엽다.

 

여기까지 구경하고 우리는 다시 미션 인 호텔 건너편 광장으로 돌아왔다. 여기에도 아기자기한 아이스 링크도 있고 예쁜 조각상과 분수대까지 오밀조밀하게 구경할 게 많구나.

 

이렇게 노닥거리는 동안 드디어 해가 지고 본격적으로 온 호텔과 거리가 조명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낮에는 그저 분위기있고 고풍스러워 보였던 호텔 건물이 조명을 입고 나니 이렇게나 몰라보게 화려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본격적인 야경 감상 및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금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근데.... 저녁을 먹는다면서 왜 호텔 레스토랑으로 안들어가구, 이렇게 밖으로 나오느냐구??? 

음... 그건 바로... 돈.... 아끼려구...

그렇다.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식사는 근사한 호텔 레스토랑이 아니라, 바로 미션 인 호텔 옆 광장의 푸드코트였던 것이다T.T

그래도 루돌프 머리띠를 한 주은이와 빨간 원피스를 입은 하은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푸드 코트의 한 테이블에 앉아 연신 웃음과 수다를 쏟아 낸다. 쯧쯧... 철없는 것들 ㅋㅋ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식사 메뉴. 통틀어 18달러 들었다. 배만 채우면 됬지 굳이 비싼 거 먹어서 무엇하리...(사실 난 레스토랑에서 비싼 거 먹고 싶었다. 근데 울 남편이 오늘 저녁은 간단히 먹자고 하도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T.T)  

그래! 이렇게 돈 아끼면 결국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은거지 남편에게만 좋은 건 아니니깐, 오늘은 나도 흔쾌히 수긍하련다! ^^

 

그렇게 푸드코트에서 맛난(?)저녁을 먹은 후 우리 가족은 본격적으로 즐거운 추억 만들기에 돌입했다.

이렇게 맘씨 좋은 백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싼타 복장을 하고 나와서 공짜로 하은이와 주은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셨고

 

호텔 옆 광장에 설치된 루돌프 레인 디어를 연상시키는 사슴 우리에서 아이들과 루돌프 사슴 코 노래를 부르며 사슴 뿔을 만져 보기도 했다.

 

그 뿐인가! 거리 곳곳을 누비는 신데렐라 마차도 여러 대 봤다!

한 번 타는데 40달러라는데 눈 딱 감고 애들을 태워줄까도 고민했으나 저녁을 18달러짜리로 먹은 마당에 그건 말도 안되는 사치이기에, 내가 그냥 하은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저건 겉으로 볼 때는 이쁘지만 막상 타면 별로 안재밌다고 ㅋㅋ (이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에 하은이가 속아서 고개를 끄덕일때는 어찌나 내 맘이 쨘하던지 ㅎㅎ)

 

벌써 밤이 깊어간다. 이제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다. 우리 방은 꼴랑 침대 하나가 있는 작은 방이었는데, 침대 두 개 짜리 방은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700달러나 줘야 한다길래 지난 11월,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냥 침대 하나 짜리 방으로 예약을 했었다. 하지만 여기도 270달러나 줬으니 결코 싼 건 아니다.

오늘 밤 남편은 바닥에서 침낭을 깔고 잘 것이고(그래서 내가 미리 침낭도 다 빌려 왔지롱^^) 나는 두 아이들을 끌어 안고 좁은 침대에서 불편하게나마 하루 밤을 견뎌 볼 생각이다.

 

 

그래도 3층에 자리잡은 우리 방은 뷰가 참 좋았다. 창문을 열면 바로 이런 뷰가 펼쳐졌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불편했던 호텔에서의 밤이 지나고, 드디어 크리스마스 아침이 밝았다. 아이들이 일어나자마자 밤새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놓고 갔다며 난리가 났다.

우리는 어제 새벽에 아이들이 잠든 후, 몰래 주차장으로 나가 차 트렁크에 숨겨 놓았던 아이들의 선물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 머리 맡에 살짝 놔주었는데 그걸 모르는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과연 어느 경로를 통해 방으로 들어왔는지 추리하기에 바쁘다. 그러면 나와 남편도 짐짓 모르는 척하며 아이들의 추리에 슬쩍 추임새를 넣어줘 본다.

하은이는 늘 갖고 싶어했던 소피아 캐슬을, 주은이는 산타 내복과 소피아 드레스를 받았다.

 

아이들은 알까? 엄마 아빠가 없는 돈에도 저희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려고, 비록 침대 하나 짜리 작은 방을 고르고 저녁식사도 싸구려 푸드 코트에서 때우면서도, 50달러 짜리 캐슬에 30달러 짜리 내복, 그리고 20달러 짜리 드레스로 선물을 준비한 사실을.

그뿐인가? 하은이와 주은이가 크리스마스 리스(wreath)를 갖고 싶다고 하자, 제 아빠가 회사일로 바쁜 중에도 종이로 직접 이렇게 예쁜 리스까지 뚝딱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다들 알다시피 추억은 돈 한 푼 안쓰고 집에 가만히 들어 앉아 있는다고 해서 거저 만들어지지 않는다. 추억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의 돈과 노력이 필요함은 만고 불변의 진리이다. 반면 추억을 만든답시고 자꾸 돈을 써버리면 나중에 정말 필요할 때 쓸 돈이 모자라게 된다. 그래서 지난 4년간 나의 미국 생활은 '추억 만들기'와 '돈 모으기'라는 두 가지 과제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해야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침대가 두 개 놓여있는 좋은 방에서 편하게 자고, 근사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분위기있는 크리스마스 다인을 즐기며, 아이들에게 마차까지 태워주었다면 더더욱 좋은 크리스마스 여행이 되었겠지만, 나는 이번 여행도 우리 가족에겐 충분히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그리고 특별히 여행은 조금 부족할 때 더 많은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Posted by 모델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