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일상

노동절 연휴를 보내며(9월 둘째 주. 2010)

모델윤 2010. 9. 12. 01:53
9월 6일 월요일은 Labor Day여서 모처럼 남편도 회사를 쉬었다. 토일월 황금 연휴니까 2박3일 요세미티 투어라도 다녀오자며 몇 주 전부터 빨빨거리던 나는 결국 도무지 잦아들지 않는 입덧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흑흑...

대신 우리는 토, 일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노동절 당일에 내가 지난 수 년간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노르웨이 에코르네스사의 스트레스리스 리클라이너(stressless recliner)를 사기 위하여 LA한인타운 부근을 찾아가 보았다. 그 이유는 미주 중앙일보 광고란에 노동절 연휴까지만스트레스리스 리클라이너가 파격세일을 실시한다는 미끼 광고에 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찾아가보니 999달러에 판다는 세일 상품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나와 버릴까 고민하던 참에 마침 남편이 니가 원하는 모델 있으면 비싸도 그냥 사자고 용기를 북돋워(?) 주어서 나는 결국 늘 갖고 싶어했던 그 모델(Reno)을,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빨간 가죽색으로 선택해 버렸다. 가격? 한국이랑 별 차이 없더라. 자그마치 2400달러!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국에서 질러가지고 올 걸 그랬다. 허나 더 가관인것은 이 날 주문을 넣고 노르웨이에서 배송을 받기까지 3개월이나 소요된단다. 남편 왈, "영란아! 니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겠다"

아래 사진은 LA한인타운 부근에 위치한 Sofa Company라는 가구점 내에 디스플레이된 스트레스리스 리클라이너 제품들의 모습이다. 



거대한 돈을 질러 버린 후 허탈해진 우리는 인근 한인상가 2층에 있는 칠보면옥 분점으로 가서 물냉과 비냉 한 사발씩을 뚝딱 해치워 버렸다. 여기는 두 번째 오는 것인데 그나마 냉면 맛이 내가 한국에서 가장 좋아했던 압구정 현대백화점 지하의 한솔냉면 혹은 여의도의 산봉냉면 맛과 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은 워낙 입덧이 심해서 냉면 맛이 좋은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흑흑



겨우 한시간 거리의 LA 한번 뛰어 줬을 뿐인데 완전히 지쳐버린 나는 솔직히 저녁까지도 사먹고 싶은 맘이 굴뚝이었으나 2400불짜리 의자를 산 여파가 너무 커, 아픈 배를 움켜잡고 저녁은 내 손으로 마련해 보았다. 메뉴는... 바로바로 가장 만들기 쉽다는 돈까스! 그냥 돈까스 고기를 사서 후추랑 맛소금으로 간하고 계란에 한 번 담궜다가 빵가루 묻혀서 튀겨 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날은 요 간단한 과정조차도 쉬엄쉬엄 하느라 참 오래도 걸렸다...

그래도 남편이 밖에서 사먹는 어떤 돈까스보다 맛있다고 칭찬해 주어서 그나마 좀 신이 났다고나 할까...



참! LA에서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Borders 서점에 들러 하은이 책을 두 권 샀다. 몇 달 전부터 하은이가 노래를 부르던 Kids Bible과 10월 말에 곧 다가오는 하은이의 첫 할로윈 데이를 위한 '도라의 할로윈 모험'이라는 책이 바로 그것이다.

하은이는 이 두 책을 서점에서부터 어찌나 마음에 들어하는지, 집에 와서 화장실에 갈 때도 잠을 잘 때도 그리고 식사를 할 때도 언제나 껴앉고 다니곤 한다. (역시 책은 전집으로 사주면 아이들이 결핍을 모른다니깐. 요렇게 감질나게 한 권 한 권씩 사주는게 제일이다 ㅋㅋ) 



그렇게 월요일이 지나가고 다음날인 화요일, 나는 산부인관 검진이 예약되어 잇었다. 우리 남편은 회사 일이 바빠서 지난 번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병원에 동행해 주지 못했다. 나는 또 혼자 30여분간 운전하여 인근 Laguna Hills에 위치한 새들백 병원에 도착하였다.

가뜩이나 이 병원에는 한국말을 하는 간호원이 없어서 손짓, 발짓 동원해 가면서 기형아 검사랑 초음파 검사를 받는게 나에게는 온통 다 스트레스인데 안좋은 몸을 이끌고 혼자 운전까지 하려니 웬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 왈, 내 몸무게가 103파운드로 지난 달에 비해서 7파운드나 줄었다는 것이다. 가만있자... 100파운드가 45킬로라고 들었으니... 뭐라고? 그럼 내가 47킬로그램?(이건 내가 중학교 때 이후로 한 번도 기록한 적이 없는 꿈의 몸무게가 아닌가? 젠장...)

그래서 입덧이 너무 심해서 잘 못 먹었다고 그랬더니 입덧을 줄이는 약을 처방해 줄테니 그걸 먹고 밥을 많이 먹으란다. 참 미국엔 별 약이 다 있다. 입덧을 줄이는 약도 있다니... 하지만 약을 처방받고 병원을 나오면서 괜시리 하늘을 한 번 쳐다 본 나는 결국 차 안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가 한국에 있었으면 울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반찬도 해주시고 친구들이나 회사동료들이랑 어울려서 맛집도 찾아다니고 그랬을텐데, 내가 미국까지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바쁜 남편과 어린 아기를 데리고 요즘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냐... 여기 온다고 혼자 젤로 좋아해놓고...쯧쯧)



사실 생각해보면 내가 입덧 심하다고 그동안 교회 집사님들이 맛있는 음식도 많이 사주시고 신경도 많이 써주셨었는데 괜히 의사가 입덧 때문에 살이 많이 빠졌다니깐 혼자 서러워움을 극대화한 측면도 있긴 있다.

그리구 내가 여전히 많이 힘들어 하니깐 수요일에는 HJ언니가 생크림케익을 사가지고 우리 집으로 놀러와 주었고, 목요일에는 윤전언니가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맛있는 떡볶이와 오뎅국, 그리고 부추전을 만들어 주었으며, 금요일에는 도윤엄마(유진언니)가 맛난 해물파전과 과일을 대접해 주셨다. 



사실 나는 그분들에게 맨날 얻어먹기만 하고 별로 대접해 주는것도 없으면서, 맨날 여기와서 외롭다고 한국에 그립다고 시덥지도 않은 푸념들만 늘어놓고 있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 참 한심하다. 

앞으로는 맨날 입덧 운운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귀중한 시간들을 더이상 비관적으로 살지는 말아야겠다.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면서, 힘든 시간들은 입을 닫고 묵묵히 견디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