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바인을 떠나기 약 한 달 전. 우리 집 현관 앞에는 드디어 집을 내놓는다는 간판이 세워졌다. 지난 4년 2개월동안 우리 가족은 단 한 번도 이사하지 않고 이 집에서 잘 살아 왔는데, 벌써 주재원 임기가 다 끝나고 이 집을 떠날 때가 되었다니 세월 참 빠르다.  

사실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주택 자금의 한도에 맞추다 보니 우리는 얼바인 내에서도 우드버리나 터틀리지 같이 새로 지은 동네에는 한 번도 살아 보지 못했고 웨스트팍에 위치한 나름 오래된(17년) 집을 렌트해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집에 대한 만족도가 그리 높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파트나 타운홈이 아니라 2층 짜리 detached house에 살아서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비교적 조용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집안에서 맘껏 뛰놀며 살 수 있었던 점은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사하기 일주일 전. 우리집 뒤쪽 거라지 앞에는 우리가 쓰레기 처리 회사로부터 빌린 대형 컨테이너가 도착했다. 지금부터 일주일 동안 서서히 귀국 이사짐을 정리하면서 나는 지난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집안 곳곳에 처박아 두었던 묵은 쓰레기들을 이곳에 버릴 예정이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 혹시나 내 맘 속에 남아 있는 얼바인에 대한 미련이 있다면 그것마저도 이 컨테이너에 다 버리고 가련다^^ 

 

이사를 며칠 앞 둔 집 안의 모습 역시 아수선하기 짝이 없다. 거실의 소파와 부엌의 식탁은 물론, 심지어 창문의 커텐까지 전부 다 내다 팔고(역시 미씨 USA 싸이트가 물건 내다 파는데는 짱!^^) 책과 그릇을 비롯한 짐들도 거의 다 박스에 포장해 버려서 이사 3일 전, 우리 집 거실과 부엌의 모습은 이렇게도 황량해졌다.   

아! 물론 한국으로 가져가려고 새로 산 나뚜지 소파와 포터리반 식탁, 그리고 하은이를 위한 포터리반 키즈 책상 등은 거라지 안에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고이 모셔 두긴 했다^^

 

그리고 지난 2주간, 나는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어 가면서 마치 연예인처럼 빡빡하게 환송회 일정을 소화해 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송회는 자발적으로 그네들이 해준 것이라기 보다는, 전부 나의 강압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잡힌 것들이 많았음을 인정한다 ㅋㅋ 

그 중에서 잠시 소개할 곳은 내가 베스트 프렌드 정민과 헌실, 그리고 페어몬트 엄마들과의 마지막 모임 장소로 활용한 요즘 얼바인 인근에서 가장 잘 나가는 레스토랑 Fig & Olive 의 모습이다.

 

헌실아, 정민아! 우리 이제 당분간은 못보겠구나. 너희들이 없었으면 내 얼바인 생활이 얼마나 삭막했을까! 내가 쑥스러워서 표현은 잘 못했다만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너희들의 이별 선물인 'Jo Malone' 향수도 기쁘게 받을께. 너희들 덕분에 내가 평생 처음으로 향수 한 번 뿌려 보겠구나 ㅋㅋ  

 

또한 이사짐을 싸고 환송회를 뛰는 그 바쁜 와중에도 나는 마지막으로 싸우스 코스트 플라자에 있는 레고샵으로 달려가 100만원 어치가 넘는 레고들을 싹쓸이 하다시피 쟁여 오는 것은 물론(아마 이제 우리 하은이와 주은이는 평생 레고 사달란 말은 안할게다^^), 

 

하은이와 주은이가 가장 좋아했던 회전목마도 마지막으로 태워 주었다. 처음엔 무서워서 이 회전 목마를 보기만 해도 울던 아이들이,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내 손을 잡고 울음 반 웃음 반으로 회전 목마를 타곤 했는데 이제는 둘 다 스스로 말 위에 올라가 한 손으로는 봉을 잡고 다른 한 손은 흔드는 경지가 되었으니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흘렀나 보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귀국을 준비하던 나에게도 가슴 아픈 일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디사이플 교회 식구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우리가 미국으로 온 바로 다음 날부터 지난 4년 2개월 동안 우리는 캐나다와 하와이 등 장거리 여행으로 교회를 나갈 수 없었던 3일을 제외하고는 매주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더랬다.

4년 전 남편 직장 때문에 아무 연고 없는 이곳 얼바인에 와서 난 처음에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블로그라도 해야 겠다는 황당한(?) 생각을 할 정도로 못견디게 외로웠었다. 게다가 엉겁결에 둘째 아이까지 낳고 키워야 했던 힘든 시간이 계속되었는데 그 동안 내 부모 형제도 형편상 나를 가까이에서 돌봐주지 못했는데, 정작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디사이플 식구들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나와 우리 가족에게 값없이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나는 아마도 이 사랑의 빚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디사이플 교회에서 내 첫 다락방 순장님이셨던 김희범 순장님 내외분께서는 우리에게 마끼 스시에서 맛난 저녁 식사를 사주셨고, 두번째 다락방의 이은창 순장님 내외분께서는 집에서 근사한 스테이크를 구워 주셨다.

 

또한 현재 우리가 속해 있는 열매 다락방 식구들은 이렇게 예쁜 케익과 정성 어린 선물을 준비해 주었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막판에 무리한 귀국이사 레이스를 펼치던 우리를 위해, 박혁성 순장님 내외분은 필요한 때마다 기꺼이 아이를 봐주시는 것은 물론 여러 번이나 따뜻한 저녁 식사를 대접해 주시곤 했다.  

 

그외에도 귀국 하루 전날에는 이곳에서 만들었던 소중한 인연 중 하나인 희찬이/희온이네 가정, 그리고 도윤이/나윤이네 가정과 함께 언젠가 그리워하게 될 우리의 마지막 모습들을 사진 속에 담아 봤다.

 

그리고 이 블로그로 만나 아직 제대로 친해지지도 못했는데(사실 딱 한 번 만났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예고도 없이 우리 집까지 찾아와 현관문 앞에서 이 선물만 전해 주고 금방 돌아간 수진 언니까지... 언니! 감사해요. 이 옷들, 언니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잘 입힐게요^^

우리 가족은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지난 4년 2개월간 얼바인에서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드디어 2월 14일. 출국 당일 아침이 밝았다. 하지만 어제(13일) 하루 죙일 미친 듯이 귀국 이사짐을 부치고 하룻밤을 호텔에서 보낸 나는, 오늘도 결코 맘편히 쉴 수는 없었는데 그 이유는 오늘이 바로 주은이의 세번째 생일이자 하은이 학교에서는 발렌타인 데이 파티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 힘들다는 귀국 이사를 막 끝낸 나였지만 열혈 엄마인 우리의 윤요사, 아침에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재빨리 생일 케익을 사가지고 주은이의 데이케어로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가 주은이에게 조촐한 생일 잔치를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그 생일 잔치가 끝나자마자 다시 차를 몰아 어제 밤 늦게까지 호텔에서 준비한 초컬릿 선물 20개와 발렌타인데이 카드를 하은이 학교로 전달했음은 물론이다^^

여기다. 지난 8개월간 주은이가 하루 5시간씩 다녔던 홈데이케어. 원래 원생이 모두 여섯 명인데 오늘은 4명 밖에 안나왔네^^  영은 자매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자매님 덕분에 제가 주은이를 맘편히 맡기고 조금이나마 제 생활을 가질 수 있었네요. 그리고 이별 선물로 직접 떠 주신 하은이와 주은이 목도리도 잘 쓰고 또 가보로 길이길이 간직하겠습니당^^  

 

지금 분당 정자동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솔직히 얼바인 라이프에 대한 요만큼의 미련도 없다. 그만큼 비록 어린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제약된 여건 속에서 4년을 보낼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돌아 다니고 또 최선을 다해 얼바인 라이프를 즐겼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소중했던 사람들을 이제 자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리고 그 중 몇몇은 어쩌면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시리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마지막으로 자기 주장도 강하고, 말도 많고, 게다가 넋두리도 한다발인 나를 그동안 따뜻하게 품어 주었던 얼바인 지인들과, 내용도 사진도 구리기 짝이 없는 아마추어 블로그에 꾸준히 찾아와 주신 얼굴도 모르는 블로거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블로그를 계속 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얼바인과 관련하여 아직 올리지 못한 포스팅이 한 십 여개 정도 남아 있긴 하지만, 나도 드디어 그저께 미국에서 짐이 도착한 고로, 당분간 글 쓸 시간이 날지는 미지수다. 

또한 정자동 카페골목 탐방기, 리터니(returnee)의 영어 학원 구하기 에피소드, 하은이의 정자 초등학교 입학식, 윤요사의 생애 첫 학부모 총회 이야기 등, 이곳에서의 일들도 제법 흥미있게 진행되고 있긴 하나 이제 얼바인 이야기도 아닌데 그런 소소한 것들까지 굳이 포스팅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다시 한 번 오늘 포스팅의 제목을 외치며 두서없는 글을 마무리 하련다. 아듀~ 얼바인!^^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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