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보내게 될 12월... 그래서 사실 난 11월부터 우리 가족만의 '멋진 12월'을 기획하기에 바빴더랬다. 이전에 포스팅 한대로 크리스마스는 '미션 인 호텔'에서 보내기로 진즉에 결정했지만, 사실 12월은 크리스마스 하루가 아니라,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에 마침 동부에서 LA로 장기 공연을 왔다는 '라이언 킹 뮤지컬'과, 인근 도시 애너하임에 위치한 혼다 센터에서 열리는 '디즈니 아이스 쇼'를 관람함과 동시에, 인근에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시즌 축제라고 말 할 수 있는 '뉴포트 비치 보트 퍼레이드'에 갈 계획을 동시에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놈의 돈이 가장 큰 문제다. 보트 퍼레이드야 사람이 좀 많이 몰리는 것이 흠일 뿐 따로 돈이 드는 건 아니지만, 공연들을 보자면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돈 때문에 추억을 희생할 순 없는 법! 나는 늘 그랬듯이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하지만 이 모든 추억을 지대로 즐겨보자고 맘 먹었다. 

 

우선, 디즈니 온 아이스!

이건 제일 앞쪽 줄에서 관람하는 비용이 1인당 약 70달러 정도했는데, 나와 하은이는 제일 싼 22.50달러 짜리 좌석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아이스 쇼는 개별 스케이팅 선수들의 개인기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스 링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 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썅! 구차한 변명은... 사실 모든 공연은 무조건 앞에서 볼수록 더욱 실감난다는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ㅋㅋ)

여긴 오늘의 아이스 쇼가 펼쳐질 혼다 센터.

 

건물 외벽에 이렇게 디즈니 아이스 쇼(부제 : Rockin' ever after)를 알리는 문구가 선명하다. 이곳에선 12월 17일에서 22일까지 딱 6일만 공연된단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변을 둘러 보니, 저~편에서 웬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참! 여긴 디즈니랜드가 있는 애너하임이지... 디즈니랜드에서 하는 불꽃놀이가 여기서도 보이는구낭...^^(이것으로 디즈니랜드 불꽃놀이도 본 셈 치련다 ㅋ)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우리(?) 디즈니사의 상술이 마구 마구 돋보이는 이런 부스들이 열 개도 넘게 차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 하은이에게 눈요기는 다 시켜 주면서도 작은 수첩 하나 사주지 않았으니..(이런 잔인한 엄마 같으니... 쯧쯧). 하지만 요즘 초절약 모드인 우리의 윤요사, 이런데 절대 1달러도 쓸 수 없다 ㅎㅎ 

 

드디어 아이스 쇼가 시작되었다.

'리틀 멀메이드'를 시작으로(나중에 인어 공주가 천정에서 내려온 줄을 타고 갑자기 공중 곡예를 펼치는데 순간 넘 감동 받아서 깜놀했다는 ㅋ).

 

'브레이브(Brave)'- 이것 역시 나중에 화살로 과녁이 부서지는 모습을 완전 실감나게 재현해서 또 한 번 깜놀^^ ,

 

그리고 '뷰티 앤 더 비스트'에 이르기까지

 

얼나마 연습했는지 아이스 스케이팅 선수들은 단 한 번의 점프 실수도 없이 고난이도 기술을 화려하게 펼쳤고, 원작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더 예쁘게 변형된 무대 의상과, 각 스토리에 맞게 적절하게 꾸며진 멋드러진 무대 장식까지 삼박자가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잘 어우러져 나와 하은이는 보는 내내 연신 흐뭇한 미소를 흘렸다.  

게다가 쇼 말미에는 미키, 미니를 비롯하여, 오늘 등장한 모든 캐릭터들이 총출동하여 화려한 피날레 쇼까지 보여주어 마치 환상 속에 있는 듯 했던 두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다음은 뮤지컬 '라이언 킹' 이야기다.

우리 하은이는 작년에 웨스트팍 몬테소리 스쿨을 졸업하면서 졸업 퍼포먼스로 라이언 킹 주제곡들을 부른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라이언 킹 애니메이션을 너무나도 좋아라 한다. 그래서 나는 지난 여름, 뉴욕 여행을 갔을때 하은이에게 라이언 킹 뮤지컬을 꼭 보여 주고 싶었었는데 그룹투어로 가는 바람에 자유시간이 없어서 그 기회를 놓쳤던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더랬다. 하지만 이번에 마침 라이언 킹 공연팀이 LA로 장기 순회 공연을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엔 꼭 하은이에게 이 뮤지컬을 보여주리라 결심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내가 처음 인터넷으로 가격표를 확인한 순간부터 예상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서 나는 장시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왕 라이브 쇼를 볼거면 최대한 무대에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하은이에게 배우들의 숨소리와 얼굴 주름까지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런 표들은 1인당 250달러에서 300달러 이상을 호가하니 내가 아무리 하은이의 문화지수 함양에 관심이 있다 한들 평범한 월급쟁이 아빠를 둔 가정에서 그게 과연 될법이나 한 소리냔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주은이를 케어한다는 목적으로 눈물을 머금고 빠져 주시고(사실 나도 엄청 보고 싶었다 T.T), 남편은 LA까지 운전하고 가야 하니깐 뺄 순 없고, 결국 남편이랑 하은이 둘이서만 보는 것으로 하고, 자리도 약간 중간 쪽으로 후퇴해서 1인당 180(수수료 포함)달러, 그러니까 하은이와 남편 자리를 합쳐 총 360달러 정도 지출하는 선에서 예매를 하게 되었다.

내가 뭐 무식하게 연극이나 뮤지컬의 관람료가 영화 수준으로 낮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중간 자리 정도도 1인당 20만원 가량이나 내야 한다면 어떤 서민이 기꺼이 라이브 공연 같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겠냔 말이다~~~(흐흑)

 

어쨌든 여기는 라이언 킹 공연이 열리는 할리우드 펜테이지스(Pantages) 띠어터.

하은이가 스타 사인이 그려진 보도에서 그녀의 페이버릿인 소피아 인형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여긴 펜테이지스 극장 내부 모습.

이 사진을 찍어 온 남편의 말에 의하면, 하은이는 두 시간도 넘는 공연시간 동안 단 한 차례도 자리를 뜨지 않고 영어로 주요 노래들을 연신 따라 부르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에게 여간 민폐가 아니었다는 ㅋㅋ 

 

이건 하은이가 가져다 준 연극 브로셔 되시겠다. 난 연극 광고 안내문을 영어로 playbill이라고 부른다는 사실도 오늘 첨 알았다. 윤요사, 요즘 무식이 아주 쩔었다^^

 

끝으로 뉴포트 비치 보트 퍼레이드 이야기.

올해로 105회째를 맞는 뉴포트비치의 크리스마스 보트 퍼레이드가 12월 18일에서 22일까지 닷새 동안 열렸는데, 뉴포트 비치 상공회의소 주최로 벌써 100년도 넘게 치러진 이 행사는, 남가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매우 유명한 행사라고들 한다.

뉴포트 비치 보트 퍼레이드는 뉴포트 비치에 자리잡은 발보아 아일랜드의 부티나는(?) 주민들이 크리스마스 즈음에 자기가 소유한 요트나 보트를 스스로 꾸며서 바다에 띄우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뉴포트 비치 보트 퍼레이드가 열린 발보아 아일랜드로 들어가는 다리의 입구 모습. 뒷차가 따라오는 바람에 이동하는 상태에서 찍었더니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물론 이 다리는 날이 어두워지면 이렇게 멋진 불빛으로 곱게 단장한다.

 

그리고 그 다리 너머로 이따 6시가 되면 화려한 퍼레이드에 참가하려고 보트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 멀리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매년 100만명 이상이 관람한다는 초인기 이벤트답게 우리 가족은 오후 4시 반쯤 도착해서 벌써 1시간 가량이나 주차할 자리를 찾기 위해 돌아다녔는데도 여전히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섬 안은 1년에 딱 몇 일 열리는 이 이벤트를 보려고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자 남편은 자기가 아이 둘을 데리고 섬 안을 빙빙 돌고 있을테니, 나라도 발보아 섬 곳곳을 돌아 다니며 구경하라고 배려를 해 주었는데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토끼처럼 깡총 차에서 뛰어 내려 물만난 고기처럼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역시 워낙 잘사는 동네라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라이트닝 수준이 우리 동네와는 격이 다르다 ㅋㅋ (사진을 자세히 보면 점점 해가 저물어 어두워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게 전부 무슨 쇼핑몰이나 대로변에 있는 크리스마스 라이트닝이 아니라, 그냥 평범히 자기 동네에서 자기가 사는 집을 치장한 수준이라니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역시 돈이 있어야 마음도 여유로워지나 보다. 나 같으면 이렇게 제 돈 들여 라이트나 소품을 사다가 아기자기하게 집을 장식하기는 커녕, 남들이 거져 준 라이트라 할지라도 아마 전기세가 아까워 못 켤 것 같은데 ㅋㅋ 

어찌됐든 울 남편은 무수한 차량의 행렬 속에 끝까지 차 댈 곳을 찾지 못했고 우리는 그렇게 저녁 6시, 막 보트 퍼레이드가 시작하기 직전 차 댈 곳을 찾지 못해 아쉽게도 그냥 섬을 빠져 나올 수 밖엔 없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2013년 12월을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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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은 어느덧 1월의 끝자락이다. 그리고 내일 모레면 벌써 2월이다. 받아 놓은 날짜는 빨리도 다가 온다는 말, 요즘들어 정말 실감난다. 다가오는 2월 14일, 그러니까 둘째 주은이의 세번째 생일이자 발렌타인 데이 날, 우린 50개월의 미국 생활을 접고 드디어 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난 오히려 그 날이 기다려진다. 마치 50개월 전 직장과 학업을 그만 두고 남편을 따라 맨몸으로 태평양을 건너올 때 설레였던 그 때처럼 말이다. 

비록 얼바인에서 보낼 시간이 채 스무 날도 남지 않았지만 그 하루 하루들 역시 최선을 다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2월 14일, 이곳을 떠나는 내 발걸음이 더욱 가뿐하도록 말이다.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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