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메모리얼 데이 연휴를 맞이하여 우리 가족은 소박하게 데스칸소 가든(Descanso Gardens)에 다녀왔다. 원래는 비행기를 타고 시애틀에 여행가려고 야심찬 계획을 세웠었지만 아직은 쌀쌀할 것 같아서 시애틀 여행은 인디펜던스 데이 즈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이번엔 그냥 하루 코스로 가족끼리 소박한 나들이를 떠나기로 한 것이다. 

사실 데스칸소 가든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하지만 2년전, 불볕 더위에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헌팅턴 라이브러리에 갔다가 말 그대로 '개고생'을 했던 생각에 나는 그동안 'XX 가든'이라는 곳들은 몽조리 피해 오던 터였다. 하지만 그 사이 시간이 꽤나 흘러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더 자랐고, '헌팅턴 라이브러리 앤 가든'에서 개고생했던 제작년 8월과는 달리 지금은 아직 5월 말이니깐 이번에는 '가든 개고생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스칸소 가든은 La Canada Flintridge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도시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내가 여행했었던 파사데나(Pasadena)와 바로 인접한 곳에 있어서 찾아가는 길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얼바인의 우리 집에서 딱 한시간(정확히 말하면 58분^^) 걸려서 도착했으니, 얼바인 주민들은 이 점 참고하셔도 좋겠다.   

 

주차장에 차를 댄 후, 데스칸소 가든으로 들어가는 입구 모습. '맴버스 온리'라고 써 있는 줄이 따로 있는 걸 보니, 여기도 나름 애뉴얼 패스가 있나부다^^

 

여기 입장료 안내판도 참고하시길. 가든을 다 둘러본 후 드는 생각은, 파킹비가 없으니 이 정도면 꽤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가이디드 트램 투어를 하진 않았고(사실 여기는 가이디드 투어를 할만큼 넓지도, 그리고 대단하지도 않다^^), 대신 여기에 나와 있진 않지만 아이들을 위한 트레인을 탔는데 트레인 가격은 1인당 3달러였더랬다.

 

입장료를 내고 메인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아기자기한 기프트 샵이 나온다. 여기를 지나가면

 

이렇게 귀여운 동화 속 숲속나라 같은 전경이 안구를 정화시켜 준다. 초록색은 바라보기만 해도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나보다.

 

그리고 바로 오른편으로 정말 작고 귀여운(혹은 구린?) 기차 한 대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기차를 보는 순간, 애걔? 내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기차가 겨우 요거야? 하는 실망이 밀려왔지만, 하은이와 주은이는 지 수준에 꼭 맞는 기차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좋아 난리가 났다.

 

그렇게 대충 기차를 타고 한 10분 정도(어쩌면 더 짧았을 수도 있다 T.T) 가든을 둘러 본 후, 이번에는 로즈 가든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아직 제철이 아닌지 장미꽃이 그닥 만발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싱그러운 나무 냄새와 곳곳에서 뛰노는 토끼며 다람쥐, 그리고 도마뱀 등을 보며 무슨 비밀의 화원에 와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가든 곳곳에는 작은 연못들이 많이 있었는데 물 속에는 잉어들이 춤을 추고 물 위에는 수면식물들이 유유히 부유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평화롭게 느껴졌다. 나무와 풀이 가득한 파크야 얼바인에도 많이 있다만, 이렇게 운치있는 숲속 연못들은 거의 없어서 그런지, 하은이와 주은이는 연신 연못가에 있는 돌바닥에 주저 앉아 연못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가 별로 덥지 않아서 선선하게 가든을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는데, 그 밖에도 이벤트 운도 따라 주어서 더욱 즐거운 날이 되었다.

데스칸소 가든에서는 매주말마다 숲속 원형 극장에서 각종 이벤트를 여는데, 사실 나는 인터넷으로 미리 이 이벤트를 확인하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막상 입구에서 표를 살때 딸 아이가 두명 있다고 했더니 안내원이 오늘 11시 반에 숲속 원형극장에서 '뷰티 앤 더 비스트' 뮤지컬이 있다고 알려 주는게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시간에 맞춰 원형극장에 도착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미녀와 야수'라면 사족을 못쓰는 우리 하은이는 쇼가 시작되자마자 급흥분 모드로 빠져들었다(하은아! 너는 아직도 판타지와 현실의 구분이 이토록 안된단 말이냐! 쯧쯧^^)

뮤지컬 내내 스피커 옆에 앉으신 덥수룩한 수염의 성우 아저씨(한국 마당극에서의 '변사' 정도 되는 것 같다)는 과장된 감정 몰입으로 시종일관 아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 잡아 주었고, 또 금발의 하피스트 아줌마는 적절한 순간마다 하프로 음향 효과를 넣어 주어 극의 재미를 돋워 주었다.

 

등장인물은 완존 간단하다. 저기 흰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주인공 벨이고 거기에 그 아버지와 벨을 괴롭히는 두 자매, 그리고 야수가 전부다 ㅋㅋ

 

그래도 배우들의 열연과 원형극장을 꽉 메운 수준높은 관객들 때문에 공연은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쇼가 끝나고 등장인물들이 꼬마 관객들과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지만 워낙 줄이 길어서 우리 가족은 그만 스킵!^^

 

그리고 우리는 이벤트가 열린 원형 극장 바로 옆에 위치한 재패니즈 가든으로 향했다. 헌팅턴 라이브러리에도 재패니즈 가든과 차이니즈 가든이 있었는데, 여기에도 재패니즈 가든이 있네... 하지만 일본식 기와를 얹은 정자에 연못과 오렌지색 브릿지 정도가 전부여서 그리 감동적이진 않았는데, 어서 코리안 가든도 하나 들어왔음 좋겠다^^ 

 

이제 마지막으로 Boddy House로 가보자. 나무가 울창한 이런 숲길을 따라서 가든의 안쪽으로 주욱~ 들어가면

 

예전에 이 가든의 주인이었던 Boddy의 호화저택이 나온다. 사실 내가 뉴포트비치에서 하도 호화저택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여길 보고 그닥 많이(?) 놀라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집이 1930년대에 지은 집이고 방이 22개나 된다니 그 당시엔 무~지 호화저택이었을 것 같긴 하다 ㅋㅋ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사진과 함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해 놓은 안내벽이 눈에 띈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1953년에 Boddy가 LA 카운티에 데스칸소 가든을 팔았고, 1966년에 재패니즈 가든이 생겼으며, 2007년이 데스칸소 가든 50주년이었단다.

 

이제 역사 공부는 그만하고, 저택을 좀 둘러보자. 하긴 이렇게 부자이니 정원도 가꿀 여유가 있었을테지. 나는 먹고 살기 바빠서 우리 집에 붙은 코딱지만한 backyard도 관리하기 힘든데 말이다 ㅎㅎ

 

Boddy House 옆에는 이렇게 Sturt Haaga Gallery라는 작은 갤러리도 하나 있는데

 

갤러리 안은 뭐 이렇게 소소하게 아기자기했구

 

갤러리 밖의 작은 정원도 사진찍기에 딱 좋게 꾸며져 있었다.

 

끝으로, 오늘 아이들과 함께 정원 이곳 저곳을 거닐면서 찍은 예쁜 꽃 사진들을 몇 컷 올려 본다. 나는 원래 사진 찍는 솜씨가 젬병인데다 오늘은 내 전용 싸구려 디카마저도 안가져가서(울 남편 왈, 내가 블로거이기를 포기했다나ㅋ). 모두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들이지만, 그래도 아래 나비가 꽃에 앉아 있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었다. 

 

그렇게 숲속 나라에 취해서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점심때를 훌쩍 넘겨 버렸다. 원래 나는 데스칸소 가든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인근 아케디아 시의 유명 맛집인 '딘타이펑'에 가려고 했는데, 애들이 피곤했는지 차에 타자마자 잠이 들어 버려서 차에서나마 길~게 자라고 얼바인 인근의 부에나팍까지 내려와서 그곳에 있는 '세븐쓰 홈'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세븐쓰 홈! 작년에 오픈 소식이 들릴 때부터 그동안 맨날 와야지, 와야지...하고 벼르다가 오늘에서야 드디어 오게 됐다. 실내도 꽤 넓은 편인데 안은 벌써 사람들이 꽉 차 있어서 우리는 패티오가 있는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젤로 맛있다는 세븐쓰 홈 3총사(해물 스타게티와 철판 볶음 우동, 그리고 클럽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역시 소문대로 모두 손색없이 맛있었는데, 내가 메인 메뉴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여기의 하이라이트인 조각케익과 팥빙수, 카페라떼 등 디저트를 흡입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뭐 오늘만 날이겠는가? 조만간 또 와서 너희 디저트 3총사들도 모두 폭풍 흡입해주마. 우하하~ ^^

 

끝으로 데스칸소 가든에 다녀온 감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7살 미만의 아이들과 함께 하루 코스로 나들이 가기에는 정말 최고라는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아이들을 데려가면 별로 놀 것이 없다는 것이 좀 안타깝다.

아마도 '헌팅턴 라이브러리 앤 가든은 샌디에고 주에, 그리고 데스칸소 가든은 산타애나 주에 비유하면 딱이 아닐까 싶다. 꽤 큰 아이들과 함께 넓고 볼 것이 많은 정원을 가고 싶다면 헌팅턴 라이브러리로, 그리고 어린 아이들과 함께 아담하고 소소한 재미가 있는 정원을 가고 싶다면 데스칸소 가든으로 고고씽하면 좋을 것 같다.   

아유... 윤요사, 누가 비교해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또 저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난리났다. 그럼 여기서 순전히 '윤요사지맘대로이자 싸구려B급감성으로 갈겨쓴' 여행후기를 마치고자 한다 ㅋㅋ 모두들 해브 어 굿 데이~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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