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하은이 유치원에서 마더스 데이 티타임이 있었다.

이전에 다녔던 유치원들에서는 그냥 아이들이 만든 선물만 집으로 보내 주곤 했는데, Westpark Montessori School에서는 엄마들을 학교로 나오라고 하는 바람에, 나는 간만에 같은 반 친구들 엄마들을 한큐에 만날 수 있어 좋긴 하였으나, 이런 모임에는 난생 처음으로 참석하는 거라서 과연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기대만 만땅, 하지만 막상 가보니 그냥 엄마들을 쫘악 모아놓고 다과를 나누며 캐쥬얼하게 수다를 떠는 그런 모임이었다.

먼저 요건 학교 측에서 준비한 음료와 과일들. 엄마가 테이블에 가서 앉아 있으면 아이들이 서빙 테이블에서 직접 담아서 엄마에게 가져다 주었다. 집에선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는 우리 하은이도 얼마나 야무지게 서빙을 하던지 ㅋㅋ

 

나는 주은이를 안고 노란 튜울립이 놓여진 테이블에 인도 아이인 소한의 엄마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았었는데, 비록 서로 영어를 잘 못하는 우리 테이블에는 어색한 정적만 흘렀지만^^ 

 

영어를 잘 하는 엄마들은 삼삼오오 같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기에 바빴다. 아... 이 굴욕!!!  더구나 아이 앞에서 영어가 후달리는 엄마의 모습이란 T.T

 

참! 나는 하은이와 그녀의 새 보이프렌드인 대만계 아이 브랜든과 기념 사진도 찍어 주었다. 둘은 이미 서로 결혼하자고 약속하였기에, 나는 얼마 전 브랜든 엄마와 함께 플레이데잇을 하면서 긴 면담의 시간을 가지기도 ㅋㅋ 나는 그 날 미국에서 25년간 살았다는 pharmacist인 그녀의 말을 거의 70% 이상 알아 듣지 못했다 (영어 못하는 엄마 때문에 우리 하은이가 예비 며느리에서 짤릴 위기에 봉착한 것은 아닌지ㅋㅋ).

 

이 날 마더스 데이 티타임에서 두 딸들의 독사진도 한 컷 씩 찍어 보았다. 사과를 입에 문채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 하은이와, 언니가 유치원에 다니는 것이 마냥 부러운 둘째 주은이의 모습이다.

  

그리고 하은이에게 받은 마더스 데이 선물들도 공개한다. MOM을 가지고 자기가 지은 poem과 손수 글씨를 써서 만든 꼬마 쿠션 되시겠다.  

 

그리고 요건 디사이플 한글학교에서 만든 마더스 데이 카드. 하은이는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데 한글 쓰는 수준이 겨우 이 정도다. 아무리 영어와 한글을 같이 배우고 있다지만, 이렇게 한글실력이 구려서야... 앞으로 내가 집에서 한글교육에 좀 신경을 쓰긴 해야겠다^^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인' 마더스 데이가 지나고, 약 한 달 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파더스 데이가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의 웨스트팍 몬테소리 스쿨은 역시나 특별했다. 킨더가튼 클래스에서는 금요일 오후를 이용하여 아이들의 아빠들을 모두 초대하여 팝콘과 레몬주스를 먹으면서 만화영화를 보는 즐거운 시간을 준비했다.

오후 2시 반이라는 어정쩡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25명 전부의 아빠들이 대부분 정시에 도착하는 것을 보고 난 깜짝 놀랐다. 어찌 이 아빠들은 예외도 없는겨... ㅋㅋ 하긴 울 남편도  내가 저녁때 5분만 일찍 들어오라면 바빠 죽는다고 늘 거절하면서도, 하은이가 유치원에서 파더스데이 행사를 한다니깐 만사 제쳐두고 2시 반 보다 10분이나 일찍 도착했으니 할 말 다했다^^

글구 엄마들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는데, 나는 파더스데이 행사가 어떤지 너무 궁금해서 나만 나왔다ㅋㅋ 결과적으로 내가 젤로 극성 엄마인 것처럼 보인 셈이지만, 미스 에이미과 미스 에린은 나와 어린 주은이까지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교실을 꽉 채운 아빠 부대들의 모습...  반 아이들 25명 중, 차이니즈와 타이와니즈가 합쳐서 10명쯤 되고, 또 인도 사람이 5명쯤 되는데 같은 나라 아빠들 끼리는 서로 인사도 하고 담소도 나누는 모습이었으나, 온리 원 코리안 가족인 나와 남편은 쫌 뻘쭘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하은이한테는 그런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인조이하는 척 ㅋㅋ

 

교실 정중간에 턱하니 자리를 잡고서 양쪽 다리에 두 딸들을 끼고 앉아 만화 영화 삼매경에 빠져든 남편의 모습. 매일같이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또 이렇게 아빠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온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그러나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갈 날도 이제 8개월 밖에 남지 않았으니 힘내시오!!!^^

 

그렇게 약 1시간 가량의 파더스데이 행사가 끝나고 하은이는 환한 웃음과 함께 지난 몇일 간 열심히 준비한 선물을 아빠에게 전달했다. '월드 베스트 대디'라고 쓰여진 예쁘게 색칠한 마우스 패드와 DAD로 시작하는 Poem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poem의 마지막 D는 dangerous라고 썼길래 아빠가 뭐가 위험하냐고 물었더니, 얼마 전 아빠 발목에 상처가 난 걸 보고 위험한 물건들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의미에서 썼다나? 하은아! 꿈보단 해몽이구나 ㅋㅋ

 

평소에 나는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라는 말을 젤로 싫어했다. 그러한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힘에 부치는 육아노동에 시달려 왔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차라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엄마는 아이들의 하녀가 아니라, 휴식도 필요하고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한 그런 사람임'을 솔직하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렇게 조부모나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 엄마의 고생과 수고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하루 빨리 정착되어야만 한다. 

내가 직접 해보니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고되고 지리하기 짝이 없는 일상의 연속이다. 나의 시간과 물질과 에너지를 들여 정성껏 아이들을 키우지만 정작 그 대상인 아이들은 부모가 기꺼이 치른 그 희생의 가치를 잘 모른다. 물론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워낙 매사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떤 문제 앞에서 부모님께 의존한 적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할 말 많은 딸이었다.

하지만 자식을 키워보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그것 자체가 심한 착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린 시절을 지나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기까지 거의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다 부모님의 희생으로 자라왔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늘 내세우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도, 엄밀히 말하면 상당 부분 자유롭게 자녀를 키워 주신 부모님으로 인해 형성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섯 살, 두 살짜리 두 딸들과 함께 미국에 건너 와서 마더스 데이, 파더스 데이를 지내면서 나는 요즘 새삼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이상 나를 키우느라 늙고 가난해진 부모 앞에서 입바른 소리나 해대는 딸은 되지 말아야 겠다고,..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무조건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도 보여 주지 말자고...

간만에 철든 윤요사가 쓴 진지(?) 모드의 포스팅은 여기서 끄읕~ ㅋㅋ

 

Posted by 모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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